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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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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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이 어슬어슬해질 때 김송희는 부리나케 퇴근길에 올랐다. 집에 가기 전에 어느 한집에 들려야겠다고 작정하였다.
방금전 작업총화를 끝내고 반원들은 염소젖을 한식기씩 마시였다. 그때 작업반의 고급기능공 박건일이 뜨거운 염소젖을 훌훌 불며 마시다가 그에게 특유한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우리 송희가 염소젖을 참 잘 끓이거던. 맛있어. 집에서 먹는 염소젖은 이렇지 못해. 그런데 사탕가루가 좀 들어가면 더 맛있을거야.》
《그거야 간단히 해결할수 있지 않나. 처더러 애한테만 간식을 주려고 하지 말고 남편이 먹게끔 사탕가루를 좀 달라고 하란 말이야. 그래서 주머니에 넣고와서 동무만 조금씩 쳐서 먹으라는거요. 난 넘겨다보지 않겠으니까. 난 지금처럼 삼삼한게 더 좋거던.》 하고 퉁을 먹이는 사람은 건일이보다 한살우인 김성철이다.
《이 친구 또 나에게 해보려드는군.》 하고 건일이가 지지않고 성철을 맞받아친다. 《내가 래일 사탕가루를 가져오겠으니 한번 자네 꼴을 봐야겠어.》
《여, 그런 걱정 그만두라. 그래 한번 사탕가루를 가져와보지뭐.》 성철이가 동무들에게 눈을 끔뻑거리며 느물거렸다.
작업복을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목욕을 해서 하나같이 훤해진 얼굴들로 염소젖을 맛있게 마시던 로동자들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치였다.
건일은 눈이 크고 코와 입이 맞춤하게 박히였고 체격도 그쯘한 미남자였고 성철은 체소한 몸집을 가졌는데 영민하고 재간스럽게 보이는 사람이였다. 생김새가 판이하였으나 준선이와 함께 작업반에서 가장 기능이 높은 이들은 늘 이렇게 다투기를 좋아하였다. 한명이 무슨 말을 하면 꼭 다른 사람이 면박을 주군 한다. 그러나 실상 악의는 없었다.
리정삼이 재미있다는듯 《그럼 염소젖에 사탕가루를 치는것이 좋다는 건일동지의 견해에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자요.》 하고 말하며 불쑥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몇사람이 손을 따라들었다. 다 유쾌하게 웃는데 유독 원동식이라는 청년만이 무슨 생각에 잠겨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강희선아바이가 《에이구, 놀고들있구만. 없는 사탕가루타령이야.》 하고 혀를 찼다.
송희는 반장 김준선은 물론 서로 다투기를 좋아하는 박건일과 김성철도, 어느덧 활기를 되찾은 리정삼이도, 훈시하기를 잘하는 강희선아바이도, 결혼한지 몇해가 잘되였으나 아직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는 원동식도 다 좋아하였다. 작업반은 정말 소박하고 화목한 집단이였다. 이들을 위해 자기의 정성을 바치는것은 송희에게 하나의 기쁨이였다.
염소젖에 사탕가루를 조금씩 쳐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때부터 생각은 그리로 쏠리였고 결국은 자기 돈으로 사탕가루를 사야겠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던것이다. 한 몇달간 받아 모아놓은 생활비가 고스란히 호주머니에 있었다. 처녀때에야 돈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것이라고 짐작하는 어머니는 딸이 받는 생활비에 대해서는 일체 상관하지 않았다. 이번에 받는 생활비까지 합쳐 아버지의 생일선물을 마련하려고 했댔는데 순간에 사탕가루로 목표가 바뀌였다. 힘들게 일하느라 수고많은 작업반원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 바치고싶었다. (사탕가루를 좀 눅게 사면 좋겠는데…) 그는 호주머니속에 손을 넣어 돈을 꼬깃거리였다.
기업소정문을 나서 도로쪽으로 향하다가 낯익은 모습을 발견하였다. 최성복이 걸음길에 자전거를 세우고 어떤 사람과 말을 나누고있었다. 순간 송희의 가슴속에 짜릿하게 전류가 흘렀다. 송희는 자기가 바쁜 생활속에서도 언제나 성복을 그리워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최성복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성복은 키가 자그마하고 몸은 약해보이나 송희에게는 무척 사랑스러워보이는 흔들거리는 자세로 역시 무척 사랑스러워보이는 그러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퇴근하는 길이야?》
《예.》
《응, 나도 퇴근길이다.》
(정말, 저런 식으로밖에 할말이 없나?) 송희는 어쩐지 섭섭함을 느끼였지만 기분은 바람맞는 나무처럼 설레였다.
성복이와 말하던 동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서둘러 말을 끝내고 가버렸다.
(참 눈치가 빠른 사람이야.) 송희는 기뻐서 성복이와 함께 걸어갔다.
성복은 요새 무슨 일을 하느냐, 누구누구는 어떻게 지내느냐, 개건공사는 어느 정도 추진되였느냐 하고 목말랐던 사람이 물을 들이키듯 좀 덤비는 어조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였다. 송희는 성복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 그의 마음이 여전히 비날론공장에로 향해있음을 느끼였다. 하기야 성복의 부모들도 비날론공장 로동계급이였고 지금까지의 그의 생도 비날론과 더불어 흘러오지 않았던가. 전망이 보이지 않도록 망해버렸다고 떠나버린 그 공장이 눈앞에서 다시 일떠서고있는데 어찌 동경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난 왜 성복동지가 비날론공장을 떠나겠다고 할 때 붙잡지 못했던가? 왜 가는게 옳다고 그를 부추겼을가?) 하고 송희는 언젠가처럼 쓰라린 후회감에 사로잡히게 되는것이였고 또 그 누구에겐가 죄를 진것만 같은감조차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아니, 그것은 아픔이였다. 띠끔띠끔 가슴을 찔러대는 아픔이였다. 송희는 성복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 후회의 아픔이 첨가되여 앞으로 더욱더 자기자신을 괴롭히게 되리라는것을 깨닫게 되는것이였다.
《지금 온 공장사람들의 관심은 합성직장에 쏠려있어요.》 송희는 자꾸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부러 명랑하게 말하였다. 《누구나 알데히드가 제대로 나와야겠는데 하고 생각한단 말이예요. 그런데 지금은 좀 사고가 일어나는것 같애요.》
《화학공장 시운전이란게 그런거지 뭐. 설비를 돌려보다가 잘못된게 나타나면 퇴치하고 또 돌려보다가 퇴치하고… 그러면서 완비되는거야. 더구나 우리 공장… 아니, 이거 내가 실수하는군.》 하고 성복은 허거프게 웃었다. 《우리 공장이 아니고 너희네 공장이라고 불러야겠지. 너희네 비날론공장이야 너무 오래 세워두어서 설비들이 다 못쓰게 된걸 복구했으니 어련하겠냐.》
송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거렸다.
《성복동지가 너희네 비날론공장이라고 말하니 막 어색하군요. 어울리지 않아요.》
《너 날 놀리는거냐. 그러다 내게 얻어맞는다. 알지?》 성복은 짐짓 얼굴을 찌프리며 무서운 상을 지어보이였다.
《주승혁아바이는 잘있니? 합성직장 시운전을 그 아바이가 기술지도를 하겠지?》
《그거야 물론이지요. 그런데 아바이네 집에서 사고가 났어요.》
《무슨 사고?》 성복의 목소리가 떨리는듯 하였다.
《주승혁아바이 아주머니가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대요. 그래서 아바이도 병원에 갔대요.》
《그런 일이 있었나…》 성복은 혼자소리처럼 말하면서 걸음을 늦추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떤 무거운 짐에 내리눌리운것처럼 머리를 짓수굿하고 말없이 걷던 성복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송희야, 난 당장 주아바이 아주머니가 입원해있는 병원에 가봐야겠어. 그러니 너와 헤여져야겠다.》
《나도 같이 가자요.》
《넌 왜 가겠다는거야?》
《성복동지가 가는데 내가 왜 못 가요. 주승혁동지는 나도 잘 안다구요. 우리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거던요.》
《그래? 헌데 집에 빨리 가지 않으면 너 엄마한테 혼나지 않니?》
《일없어요. 잠간 들렸다가 가도 돼요.》
《그렇다면 가자.》
최성복은 여전히 자전거를 끌고 김송희와 나란히 산업병원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성복동진 별로 주승혁아바이를 생각하는것 같애요.》
송희의 호기심어린 말에 성복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난 사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간 후 주승혁동지를 큰아버지처럼 여기고있어. 아버지가 없은 다음 어려울 때 우리 집을 돌봐주었거던.》
1년전 성복의 집은 비물피해를 입어 부엌바닥으로 물이 새여들어왔다. 그때문에 탄불이 들지 않았고 온 가족이 탄내를 먹고 쓰러지게 되였다. 그 소식을 듣고 주승혁이가 찾아왔다. 그는 집을 돌아보고 다시 짓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전후에 지은 단층집은 벽체가 기울어지고 기초바닥이 거의 물에 침수되였다. 주승혁은 성복과 그의 어머니에게 직장에서 도와주겠으니 집을 다시 짓자고 하였다.
《너무 걱정할게 없습니다. 우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우선우선한 얼굴로 어머니에게 말을 하던 주승혁의 인정깊은 모습을 성복은 언제든지 잊을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승혁이가 성복의 집을 다시 짓는것때문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어야 했는지 성복은 그때 당시는 알수가 없었다. 승혁은 집건설에 필요한 세멘트와 기와들을 해결하기 위해 직장의 전동기들을 타기관에 빌려주었는데 후날에 그 사실이 비법적인것으로 제기되여 법기관의 취급을 받게 되였다. 승혁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직장장직에서 해임된 그날에 성복은 집으로 찾아가 머리를 숙이였다.
《직장장동진 우리 집때문에…》
울먹거리는 성복에게 승혁은 대범하게 웃어보이였다.
《네 집때문이 아니니 신경쓸게 없어. 다 내가 일을 잘못한탓이야. 뭘 그러느냐. 직장장을 그만둔게 무슨 큰게라고…》
순간 성복은 체소한 체격의 승혁이가 산악처럼 거연한 모습으로, 영원히 존경할만 한 인간상으로 안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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