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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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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313회 작성일 23-06-0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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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회)

제 2 장

4

(1)


몇년전에 있은 그 일을 주승혁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잊을수 없을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가슴을 허비는 비참한 추억이라고 할수 있었다.

당시 합성직장장 주승혁은 소형방법으로 합성생산공정을 돌려보려는 기업소의 조치(어떻게 하든 합성생산공정을 돌려 얼마간이나마 빙초산을 생산해보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탐색해보는 과정에 소형안까지 나오게 된것이였다.)에 따라 기술자들과 함께 어느 한 화학공장에 갔다. 그 공장에서 비수은법으로 아세트알데히드와 빙초산생산공정을 돌리고있었다.

출장갔다와서 소형공정을 꾸리는데 지배인이 찾았다.

정준학지배인은 자기 방에 멍히 앉아있다가 승혁을 맞이하였다.

《그래 소형방법으로 꽤 될수 있겠소?》 하고 묻는 지배인의 얼굴표정이 너무나 침통한것이여서 승혁은 어리둥절해졌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해봐야지요. 저 그런데 무슨 일이…》

《해본다?》

지배인은 시들한 소리로 중얼거리며 무슨 문건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고나서 말하였다.

《직장장동무, 이젠 아무런 시도도 할 필요가 없게 됐소. 이젠 끝장났단 말이요.》

《무슨 소립니까?》 승혁은 어쩐지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이윽고 지배인은 우에서 지시가 떨어져서 합성, 중합, 방사, 섬유직장의 설비들을 해체하여 뜯어보내게 되였다고 하였다. 전망성이 없는 2.8비날론련합기업소의 비날론계통설비들을 뜯어 서해지구의 한 화학공장을 추켜세운다고 한다.

《난 그 조치를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승혁은 격분으로 앞상에 올려놓은 두주먹을 떨면서 부르짖었다.

《어쩌겠소. 자기들도 하는수 없어 취한 조치라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릴 다 죽이려드는군요.》

《비날론계통은 그만두고 가성소다나 염화비닐 같은 다른 화학공정들이나 돌리라는거지.》

승혁이가 담배를 피우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지배인은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나 합성에서 생산을 해보자고 하는 직장장동무를 볼 낯이 없수.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당장은 다른 수가 없소. 해체조치에 응하는 수밖에…》

《난 우리 합성직장 설비들을 내놓지 못하겠습니다.》 승혁은 비장한 결심을 가슴속깊이 다져넣으면서 씹어뱉듯 말하였다.

《그렇게는 안될거요.》 준학은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인차 성에서 설비해체그루빠가 도착하게 되오.》

승혁은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제끼며 벌떡 일어섰다.

《내가 살아있는 한 합성직장설비들은 뜯을수 없습니다.》

그는 준학지배인에게 인사도 없이 방을 나와버렸다. 직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망해버린단 말인가.)

이날따라 눈에 보이는 비날론계통의 생산건물들은 더욱더 한산하고 쓸쓸하게 안겨왔다. 비날론계통의 직장성원들은 다 다른데 동원나가서 보이지 않는다. 합성직장에서만 소형공정을 꾸리느라 일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나라가 고난의 행군에 들어서면서 멎어버린 생산공정들… 그후로 돌아가본적이 없어 설비들이 다 녹이 쓸었다. 중합직장에서는 황소의 영각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안에서 소를 키우고있는것이다. 연유가 긴장하여 자동차들이 뛰지 못하는 형편에서 소달구지가 여러모로 유익하게 리용되였다. 때문에 일부 직장들에선 물동운반에 달구지를 쓰기 위해 부림소를 기르고있었다.

녹이 쓸어가는 설비들에서 일부 쓸만 한 부속들이라도 뜯어 유용하게 리용하겠다는 성 간부들의 타산이 그럴듯하게 생각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거야 다른 공장들과는 다르지 않는가. 비날론공장이다.

《그렇다, 이건 비날론공장이란 말이야. 무조건 다시 살려야 할 공장이야.》 하고 승혁은 소리내여 혼자소리를 하였다.

(어떻게 일떠선 비날론공장인데… 아니다, 난 믿을수가 없다. 결코 그렇게 될수가 없다. 무슨 착오가 생겼을것이다.)

비날론공장이 건설되던 그 시절이 돌이켜졌다.

…날이 어두워지자 먹지 못해 텅빈 배속에서 쪼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소학교학생인 주승혁은 혼자 텅빈 집에 있었다.

승혁은 아직도 공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대체 왜 아직도 오지 않는거야? 배고픈데 밥도 해놓지 않고.)

공장에 나가 일하면서도 자식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돌려오던 어머니가 요새는 왜 그런지 자꾸 늦게 들어오군 하였다. 어머니와 함께 화학공장에서 일하는 형도 보기가 힘들다. 승혁이보다 터울이 심하다보니 일찍부터 집안의 어른구실을 해온 형이 승혁을 많이 돌봐주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공장에 나가고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 만나보기가 힘들었다. 형은 화학공장 하조용기직장 로동자였다.

승혁은 혼자서 툴툴거리다가 아래목에 누워 곯아떨어지고말았다. 낮에 성천강에 나가 자맥질을 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기에 피곤하였다.

그는 꿈속에서도 물고기와 씨름질을 하였다. 커다란 잉어를 덥석 안았다가 그놈이 꿈틀하고 용을 쓰자 놓쳐버리고말았다. 그는 잉어를 따라 헤염쳤다. 잉어는 잡힐듯말듯 그의 속을 태우면서 달아났다.

잉어를 놓치고 속이 상해 물속에서 나왔는데 몇명의 소년들이 불을 피우고 어죽을 먹고있었다. 승혁이가 군침을 흘리며 같이 먹자고 다가가자 소년들은 승혁이가 잉어를 놓쳤기때문에 어죽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하였다. 승혁이가 결이 나서 그들과 싸우는데 누군가 그를 흔들어깨웠다. 눈을 뜨니 어머니와 형이였다.

《얼마나 배고프겠니? 어서 밥을 먹어라.》 어머니가 살뜰하게 말하였다.

밥상우에 놓인 밥을 보니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감정은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헤덤벼치며 밥을 먹는 승혁을 보며 형이 싱그레 웃었다.

《자식, 배가 고프긴 고팠구나.》

《씨, 공장에만 나가살면서…》 승혁은 입을 삐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안됐구나. 내가 래일부턴 밥을 다 해놓겠다. 그러면 되지?》 어머니는 승혁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싫어요.》 승혁은 머리를 흔들었다. 《혼자 있기 싫어요. 형님도 없으니 심심해요.》

《철없는것, 불을 켜놓고 공부를 해라.》 형이 꾸중을 하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뭐.》

어머니는 정다운 미소를 짓고 여전히 볼이 부어있는 승혁에게 말하였다.

《승혁아, 김일성원수님께서 너희들에게 좋은 옷감들을 많이 주시려고 비날론공장을 건설하게 하시였단다. 몸소 공장터전도 잡아주시고 군대아저씨들도 많이 보내주시여 공장을 짓게 하시였단다.》

《비날론이라는게 뭐예요?》 승혁의 두눈에 호기심의 불꽃이 반짝이였다.

《그건 우리 나라에서 새로 만든 천이름이야. 우리 나라에 흔한 석회석과 무연탄에서 뽑아내는 천이라나.》 하고 형이 말하였다,

《체, 거짓말! 세상에 그런 천이 어디 있나요? 석회석과 무연탄이라구요?》 승혁은 형님이 자기를 속인다고 생각하고 툴툴거렸다.

《정말이야. 그런 천을 만들어냈대.》

《정말? 그건 동화이야기처럼 재미있구나.》 승혁은 비날론이라는 천의 신기함에 놀라움을 느끼며 입이 다 벌어졌다.

《그 비날론이라는 천은 리승기라는 박사선생님이 만들어냈대. 아버지원수님께서 그 박사선생님을 이끌어 지금은 큰 공장을 짓도록 하신거야.》

《형님과 엄마는》하고 어머니는 승혁의 찢어진 바지를 깁기 위해 바늘에 실을 꿰면서 말하였다. 《비날론공장건설장에 나가서 군대아저씨들의 일을 도와준단다. 그래야 빨리 공장이 일떠서고 비날론천을 짤게 아니냐.》

《이제 비날론공장이 건설되면 내게도 옷이 생기나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이 생긴다더라. 비날론이라는게 그런 천이라는구나.》 하고 형이 말하였다.

《야.》 승혁은 환성을 질렀다.

승혁은 더 좋은 새옷을 입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가왔다.

그때까지만도 승혁은 다 해진 바지를 입고 해진 운동화를 신고 다녔고 다닥다닥 기운 아마직보자기에 학습장들과 연필을 싸메고 소학교에 다녔다.

《난 비날론옷을 입고서 아버지원수님께 인사를 드릴래.》 하고 승혁은 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머리를 꾸벅 숙이였다. 《이렇게…》

그러는 승혁을 어머니와 형은 정겹게 바라보고있었다.

그후 얼마 안있어 형은 기술전습을 받기 위해 선발된 많은 로동자들과 함께 청수화학공장에 있는 비날론중간공장에 갔다.

형은 한 2년간 청수화학공장에 있는 비날론중간공장에서 일하면서 합성생산공정운전실습을 받았다. 형은 때때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여 가족의 안부도 묻고 자기의 생활에 대해서도 써보내였다. 승혁이가 형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읽어주군 하였다.

형은 어떤 편지에서 리승기박사를 만나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쓰기도 하였다.

리승기박사가 분원장으로 있는 과학원 화학분원이 청수에 있었고 연구사들은 실습생들과 함께 비날론중간공장에서 일하면서 연구사업을 하고있었다.

《…리승기박사선생은 50대 중반기의 나이인데 안경을 끼고 몸이 약한분이였어요. 우리 실습생들과도 잘 어울렸는데 참 소탈했어요. 우리 실습생들이 비날론을 연구하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더니 수령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떻게 연구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는가를 말씀해주시더군요.》 하고 형은 편지에 써보내였다.

수령님께서는 병사 한사람한사람이 귀중하던 때에 전선에서 싸우던 지식인출신의 병사들을 리승기박사의 비날론연구소로 보내주시였으며 박사가 전시의 조건에서 실험기구와 시약이 모자라 안타까와할 때는 몸소 외국에 사람을 보내여 많은 실험기구와 귀중한 시약들을 구해오도록 하시였다.

원래 리승기박사가 학명으로 부르던 비날론의 이름은 《합성1》호였고 혹은 학계에서 폴리비닐알콜계섬유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어느날 수령님께서 비날론중간공장에서 생산한 섬유로 짠 천과 세타 등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면서 섬유를 우리 식으로 부르는 말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박사가 폴리비닐알콜계섬유라는 뜻에서 《비알론》이라고 부르려 한다고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무명낳이를 할 때 날실, 들실이라고 하였는데 섬유의 이름을 우리 맛이 나게 《비날론》으로 부르자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비날론》이라는 말이 세상에 나오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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