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조선의 힘》 제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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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 1 편
12
전선사령관 김책의 명령에 의하여 최현의 련합부대는 김천-문경간 도로를 중심으로, 박정덕의 련합부대는 김천-대전간 교통로를 차단하고 적들을 견제하게 되였다.
김천은 경상남북도와 전라도, 충청도를 련결하는 주요 철도분기점이며 전략적도로중심지로서 부산과 마산, 진주, 대구 등지에서 북으로 가려면 이곳을 거치지 않을수 없다. 김천에서 동북쪽으로 거슬러가면 문경고개를 넘어 충주-서울간 도로가 뻗어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대전-평택-수원을 거쳐 서울로 가는 철도와 자동차도로가 열려있다. 그러므로 김천-문경간 도로와 김천-대전간 교통로를 차단하는것은 전적으로 수송수단에 매달리고있는 적들의 진공로를 대부분 차단, 봉쇄하는것으로 된다. 그만큼 치렬한 전투도 예견해야 했다.
방어는 교호식으로 하게 되여있었다. 즉 어느 한 중대나 대대가 임의의 외통길을 제정된 시간까지 막아 싸우다 물러서면 다른 중대 혹은 대대가 다음계선에서 적들을 견제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적들은 매개 구간의 다리, 고개길, 골짜기 등에서 치렬한 전투를 치르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게 되였다. 그렇게 얻어진 귀중한 시간을 리용하여 다른 전선련합부대들은 신속히 후퇴할것이다.
류현수가 배속된 중대는 날이 어두울 때까지 태화동의 개활지대에서 도로를 차단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있었다. 방어엔 불리한 지역이였으나 물량이 많은 직지천을 가로지른 약 20m의 다리가 있어 여기에서 적들의 기계화보병을 저지시킬 계획이였다.
그리하여 현수는 또 다리를 앞에 두게 되였다. 락동강상의 배떼다리와는 판다른 콩크리트다리였다.
중대장이 그를 불러 말하였다.
《여보 공병! 이놈의 다리를 어떻게 하면 단숨에 날려버릴수 있소?》
현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반땅크수류탄 둬개면 알아보지요.》
《그건 안돼!》 중대장은 성을 냈다. 《중대에 반땅크수류탄이 모두 몇갠지 아오?… 구대원이라는게 그만짝도 생각을 못하다니, 무슨 다른 수가 없겠소?… 머리를 짜내보오!》
현수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다리주위를 빙빙 돌다가 마침 직지천 모래불에 박혀있는 불발된 폭탄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것을 파내여 교각우에까지 끌어갔다. 모두 피하게 하고는 손수 신관대신 수류탄을 달고 길게 끈을 매놓았다. 전중대가 뚝너머 전호속에 머리를 틀어박자 끈을 당겨 폭탄을 터뜨렸다.
무시무시한 굉음이 터졌다. 콩크리트파편들이 사방 휙휙 날아가고 하늘높이 솟구쳐오른 물과 모래의 지붕이 뚝너머에까지 덮씌웠다.
중대장은 만족하여 현수에게 반나마 젖은 담배를 자꾸 권했고 애젊은 소대장 리유정은 얼굴을 붉히며 언제부터 전투에 참가했는가고 물었다. 현수는 대답하기가 난처했다.
《소대장동무, 내야 공병이 아닙니까. 그저… 좀 해봤지요.》
련락병이던 박원철이 속상해하며 무엇인가 자꾸 말하고싶어했으나 현수는 따갑게 눈총을 쏘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보안간부훈련소 입대생이며 전쟁첫날부터 싸워온 공병중대장이였다고 으시대겠는가!…
현수는 가운데가 뭉청 끊어져나간 콩크리트다리를 바라보고있었다. 남들은 무심히 볼수 있을지언정 그만은 그저 례사롭게 볼수 없는 다리였다. 오늘은 아무런 미련도 주저도 없이 폭파해버렸구나. 헌데 엊그제는… 명령받은 시간에 배떼다리를 폭파하지 못한 탓에 적땅크들이 달려들었지. 무정장령이 격노하고 상급예심원이 달려오고… 나중엔 최고사령부에까지 그 일이 보고된다고 했다. 이 준엄한 때 한 중대장의 문제가 전선사령관동지를 통해 최고사령부에까지 보고되다니!… 그는 손가락마디를 뚝뚝 꺾기 시작했다. 그만하자. 인젠 그만 생각하자. 그러다간 머리가 터질것만 같다… 전선사령관동지가 말했듯이 피로써 과오를 씻어야 한다. 지금은 오직 그길밖에 없다.… 갑자기 머리를 홱 돌리였다. 석대의 화물자동차가 다리목에 와 멎고있었다. 몸이 체소한 군관이 차에서 내려 끊어진 다리를 살펴보더니 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아침까진 제대로였는데 언제 이 모양이 됐어. 빌어먹을!…》
그러나 잠시후엔 보병중대장더러 도와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가 어느 련대 병기공급장인데 대전병기창에서 탄약을 실어가는길이라고 했다. 여기서처럼 우리도 마지막까지 적들을 견제할 임무를 맡았다, 탄약이 없이야 어떻게 싸우는가, 어떻게든 자동차들을 건네도록 도와달라! 하는 말을 목청껏 열심히 퍼부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현수는 부지중 최현사단장을 생각했다. 사품치는 락동강의 물결우에서, 요동치는 배떼다리우에서 무서운 표정을 하고있던 사단장, 도하장을 떠날 때엔 어깨를 툭 쳐주기까지 했었다. 《봐둔 체네가 있나?… 원, 못난이로군!》하는 괴이한 말까지 했었다. 지금 그의 사단도 어덴가 멀지 않은 곳에서 결사적인 방어전을 하고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렇지만 저 병기공급장은 어떻게 벌써 적들이 밀려들고있을수도 있는 도로로 차를 끌고 가겠다는것인지?… 어쨌든 그는 보병중대장을 설복했고 중대장은 사람들을 동원시켰다.
현수도 그리로 갔다. 거의 전중대가 달라붙어 여울목으로 차를 밀어주었다. 물속에서 첨벙거리며 목터지게 고함을 질렀고 어떤 병사들은 괜히 신이 나서 뛰여다녔다. 그때 누군가 현수의 팔소매를 덥석 잡았다.
《현수! 이게 현수 아니겨? 응?!》
자동차에 타고있던 몸집이 실한 병사였다. 현수를 끄당기며 울음소리처럼 부르짖고있었다.
《나여, 지봉이여, 그래두 날 모르겠어?!》
현수는 자기의 팔을 아프도록 꽉 그러쥐고있는 그의 벌깃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코구멍으로 물을 들이켰을 때처럼 골수에 쩡- 파문지어가는 충격을 느꼈다.
《지봉이, 너였구나. 응? 이 곰같은 친구야!-》
그역시 부르짖었다. 물속에서 마구 끌어안고 저만치 자동차를 밀어가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언제 군대 나왔니. 응? 의용군으로?!… 그래 언제? 어느 부대라구?… 나야 뭐 오랬지. 응, 보위성직속… 아니, 우린 말이야. 여기서 놈들을 막아야 해. 그럼! 한데 지금 어데로 간다구?…》
그들은 상대가 미처 대답할새도 없이 서로서로 련달아 질문의 포격을 들이댔다. 로지봉은 코를 벌름거리고 퇴색한 군복팔소매로 땀흐르는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제말만 제말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게 얼마만이여, 응? 현수- 난말이여, 야- 몰라보게 변했지?…》
그러나 그때 여울을 건너간 자동차우에서 병사들이 소리치고있었다.
《지봉동무, 뭘해, 빨리 오라!-》
현수는 그와 함께 첨벙거리며 나갔다. 로지봉이 자동차에 오르는것을 도와주며 이제 가면 편지하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어데로, 어느 우편함주소로 편지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못했다. 아직 그자신도 자기 중대의 우편함주소를 알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차가 떠났다. 로지봉도 마주 소리치고있었다. 서로 다급히 덤벼치며 제말만 고집스레 웨치다가 그만 입을 다물고말았다.
자동차들은 먼지를 말아올리며 달려갔다. 적재함우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손을 흔들던 로지봉의 모습도 뿌연 먼지구름에 가리워졌다. 현수는 멀거니 그쪽을 보고있었다. 애수와도 같은 회오의 정이 그의 마음을 젖게 하였다.
로지봉… 그는 현수의 친척도 아니요, 친우도 아니며 일생 우정을 약속한 절친한 벗도 아니다. 해방전 어느 한때 죽음의 고비를 함께 헤쳐온 일이 있을뿐이다. 그리고는 헤여졌다. 친우로 벗으로 될수 있었고 혈육이상으로 가까이 지낼수도 있었으나 국경대안에서 서로의 고향을 찾아 현수는 압록강 상류쪽으로, 로지봉은 먼 충청도 보은땅으로 갈라져갔다.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거의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그들을 이처럼 우연히 만나게 해주었고 미처 인사말도 나눌새없이 또 헤여지게 하였다.
현수는 차들이 굽인돌이 저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서있었다. 길우에는 누르무레한 먼지구름만이 소리없이 갈앉고있었다.…
현수는 자기의 위치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자동차들이 달려간 굽인돌이 너머쪽에서 폭음이 울려왔다. 땅크포와 위협적인 기관총소리도 들려왔다. 전호속에서 전사들이 목을 길게 빼들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가 하고 상상해보며 은근히 무엇인가를 기다리고있었다. 갑작스레 격렬하게 터지던 폭음과 총포성이 뚝 그쳤다. 중대장이 웨쳤다.
《중대- 전투준비!-》
적땅크들이 굽인돌이쪽에서 나타났다. 무한궤도에서 말아올린 먼지가 구름발처럼 커져왔다. 현수는 으득으득 이발을 갈았다.
《지봉이!-》
마음속으로 괴롭게 부르짖었다. 어느새 적땅크들이 강철이발로 땅을 물어뜯으며 눈앞으로 다가들었다.
《중대- 전투준비!-》
중대장의 웨침소리에 이어 각 소대장들이 전투준비구령을 성급히 받아웨쳤다.
현수는 반땅크수류탄을 꽉 거머쥐였다. 한 보병전사로서 달려오는 적땅크의 굉음소리를 여겨들으려니 가슴에 심장이 꽉 들어찬듯 했다. 피나는 증오와 함께 전투를 앞두고 흔히 느끼는 고도의 흥분에 사로잡혀 점점 가까와오는 적땅크들을 쏘아보았다. 적들은 땅크마다 흰 뼁끼로 무슨 글들을 써갈겼다. 눈앞으로 밀려드는 먼지발속에서 현수는 가까스로 그것을 읽었다. 첫번째 땅크에는 《서울행》이라고 써있었고 두번째 땅크에는 《대전을 잊지 말자!》라고 썼었다.
현수는 저도모르게 이발을 꽉 악물었다. 그때 《서울행》이라고 쓴 첫번째땅크가 끊어진 다리우에서 멎어섰다.
순간 반땅크총소리가 울리고 적땅크가 흠씰하더니 불길에 휩싸였다. 드디여 전투는 시작되였다.
날이 어둡기 시작할무렵 세번째로 적들이 공격해왔다. 건너기슭에서 불타버린 땅크와 자동차들을 밀어내고 이쪽대안을 향해 화염을 방사하였다. 야밤의 파도소리처럼 무시무시한 소음이 쏴- 밀려왔다. 적황색의 뜨거운 불길이 흉장우로 땅을 핥으며 우-우 밀려갔다. 불똥이 떨어져 군복잔등을 태웠고 거센 화염에 숨도 쉬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었다. 현수는 박원철이 목을 졸라맨듯 모지름을 쓰며 손톱으로 가슴을 쥐여뜯는것을 보았다. 현수는 그의 잔등에 끈적끈적 달라붙은 불똥을 털어냈다. 그때마다 손바닥 살가죽이 뭉청뭉청 떨어져나가는듯 했다. 그의 눈이 뒤집혀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불을 털어냈다.
적땅크에서 12. 7mm 대구경기관총들이 울부짖었다. 그 미칠듯 한 아우성속에서 미약한 반땅크총소리가 났다. 적땅크 한대가 또 흠칫 몸체를 떨더니 멎어섰다. 또 한방의 반땅크총소리, 어김없이 이번에도 꽁무니를 돌려 우회하려던 적땅크에 불이 확 당겼다. 그러나 바로 그때 다른 적땅크포가 직접 조준사격으로 이쪽의 반땅크총진지에 포탄을 쏘았다. 흉장이 무너지고 검붉은 화염이 회오리처럼 그우를 휘감았다.
중대장이 현수를 소리쳐 불렀다. 가까스로 그 소리를 가늠해 들을수 있었다. 현수가 달려가자 중대장은 배를 그러안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다치지 마오. 난… 늦었어. 나대신… 저 땅크들을 막아주- 30분만 더 견지하면 되겠는데… 난 다 들었소. 동무도 중대장이였다지?… 저 중기좌지에 내 반땅크지뢰 3개를 남겨뒀는데… 그걸로 해보오. 인젠 반땅크총도 없고 반땅크수류탄도 없소. 그저 동무의 경험과 용감성을 믿는수밖에… 부탁하오!》
현수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윽고 그는 2명의 자원해나선 병사들에게 반땅크지뢰의 신관을 장치하는 법과 그것을 어떻게 적땅크앞에 던져넣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현수의 뒤를 따라, 그러되 서로 10보이상의 간격을 두고 직지천을 건너가 적땅크를 까부시기로 했다. 중기관총좌지에서 그들을 엄호해주었다. 현수는 반땅크지뢰를 가슴에 안고 무릎을 치는 직지천에 들어섰다. 돌연 벼락치는듯 한 총성에 약간 놀랐다. 그러나 물속에서 전투를 치르기에 습관된 그는 중대에서 그를 엄호하는 총소리라는것을 알았다. 물에서는 먼 총소리도 귀에 대고 쏘는것 같이 들린다.
현수는 끊어진 다리아래로 직지천을 건넜다. 15m가량 되는 로출된 물과 모래불을 죽기로 내달려 강건너 개활지대에 나섰다. 사슬을 풀어헤친 적땅크뒤에 몸을 숨겼다가 또 앞으로 내달렸다. 귀따가운 기관총의 질풍사격이 그가 달려가는 밭둔덕을 휩쓸었다. 적땅크포들도 그를 목표로 정한것 같았다. 그는 포탄구뎅이속에 뛰여들었다. 그리고는 열하나, 열둘, 열셋 하고 헐떡거리며 중얼거렸다. 쾅- 포탄이 터졌다. 그 순간 또 일어나 달려갔다. 하나, 둘, 셋, 넷… 《M26》형 적땅크포는 포탄 한발 장약하는데 16초 걸린다. 그러므로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초를 계산하여 포탄자리를 옮겨가야 한다.
또 엎드렸다. 순간 무엇인가 머리를 무겁게 때렸다. 귀속에서 분간키 어려운 길고 긴 여음이 짱-하고 울리였다. 정적, 갑자기 귀구멍을 틀어막고있던 솜뭉치를 빼버린것 같았다. 아츠러운 쇠소리를 지르며 적땅크가 굴러오고있다. 재채기소리같은 기관총소리, 무한궤도의 신음소리, 현수는 벌떡 몸을 솟구치며 적땅크의 무한궤도에로 지뢰를 던져넣었다. 이어 포탄구뎅이속으로 굴러내렸으나 뒤미처 무엇인가 그를 휘감고 후려치고 불태우며 태를 쳐놓았다. (지뢰… 지뢰… 정확히 던졌지… 정확히… 그런데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총살… 철직… 하지만 난 싸우고있다. 어떻게 돼서 내가 아직도 살아 싸우고있을가? 그렇지… 최고사령부에 보고되였으니까. 최고사령부에…) 현수는 눈을 감은채 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었다.
…오래동안 그는 자기를 업어가고있는것도 몰랐다. 캄캄한 밤중이였으나 사방에서 총포탄이 튀고 화광이 솟구치군 하여 주위는 순간순간 대낮같이 밝아지군 했다. 중대병사들이 교대로 그를 업어갔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가만, 정신이 들어요. 예?… 날 모르겠어요?》
현수를 따라온 이전 련락병 박원철이였다. 현수는 그를 알아보았다. 아니, 이상하게 갈린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러자 쿡 찌르는것 같은 모진 아픔이 심장에 사무쳤다. 이 보잘나위 없는 이전 중대장을 따라 예까지 왔구나. 그는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조금만!… 이제 군의소에 가면… 내말을 들어요? 예?!…》
뜨거운 열풍이 엄습해왔다. 현수는 입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부르고싶었으나 입술이 녹아붙은듯 했다. 가까스로 내려뜬 눈시울아래 벌거우리한 화광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얼마후 전방군의소에 도착한듯 했다.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사방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전지불을 켜든 군의가 다가왔다.
《중상이요?》
《예, 중상입니다. 군의동지!》
군의는 뒤쪽에 대고 소리쳤다.
《간호장동무, 빨리!》
전지불의 동그라미가 현수의 목덜미쪽에서부터 가슴팍으로, 어깨밑의 험한 상처부위로 옮겨갔다. 무더웠고 참을길없이 목이 타들었다. 현수는 인정사정 모르는 군의가 상처를 동인 내의쪼박을 풀면서 움씰 몸을 뒤집었을 때 뼈속까지 찌르는 아픔에 으드득 이발을 갈았다.
간호장이 다가온 모양이였다. 군의가 큰소리로 말했다.
《응급처치를 다시 하오! 중상은 아닌데 상처를 되는대로 다뤘소. 원, 총만 쏠줄 알았지 붕대조차 제대로 감을줄 모른다니까!…》
전지불의 동그라미가 또 들레들레 흔들거렸다. 그 순간 현수는 자기의 가슴팍으로 낮추 수그린 얼굴을 보았다. 상처가 마구 쑤시였다. 그는 신음소리를 내질렀다. 무던히도 낯익은 두눈이, 간호장 리숙의 두눈이 그를 살펴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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