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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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4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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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직장에서는 초산비닐생산공정의 탑과 설비, 장치물들을 보수정비하는 작업과 잔사처리공정을 보수하고 설치하는 작업이 동시에 벌어지고있었다.
주승혁은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기술적조언을 바라면서 그를 찾았다. 그는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선망을 받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조소하게 되였고 때없이 지난날의 실책들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군 하였다.
그가 직장건물안으로 들여온 잔사처리공정설비들을 조립하는 작업을 지도하는데 정류공정에서 수리공 한명이 와서 조립이 안된다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 가보니 정류2탑의 수십개나 되는 정류단들을 다 보수하고 다시 맞추자고 하는데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고있었다. 수리공들중에 정류탑을 해체조립해본 사람이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렇게 눕혀서 들이밀려 해서야 들어가는가. 가로 세워서 들이밀라, 슬슬 얼리면서…》
주승혁의 말대로 하니 정류단이 탑속으로 들어갔다.
《귀신은 귀신이군요.》 하고 수리공들이 말하였다.
(여기에 무슨 감탄할것이 있단 말인가.) 하고 승혁은 자신에게 말한다. (이건 그저 경험일뿐이다. 경험이란건 벌써 낡은것이지. 현시대는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는데 너한테야 무엇이 있단 말인가. 첨단은 새 세대들이 돌파해나간다. 문종국, 최성복이 그리고 강혜경이와 같은…)
강혜경을 상기하자 가슴이 띠끔 아파났다.
한사람이 와서 중합직장에서 지배인과 기사장이 찾는다고 하는 지시를 전달하였다. 그는 합성직장과 마주해 서있는 중합직장으로 갔다.
오래동안 내버려두다싶이 한 중합직장건물은 창문들이 깨여져나갔고 벽체의 블로크나 벽돌들이 드러났다. 숱한 사람들이 달라붙어 건물보수작업을 진행하고있었고 밖에서 장치물들의 제작이 한창이였다.
승혁이가 2층의 로천구역으로 가니 지배인과 기사장이 몇명의 기술자들과 토론을 하고있었다. 들으니 본래 있던 정류탑을 해체하자고보니 탑안에 초산비닐수지가 꽉 메였는데 이것을 어떤 방법으로 뜯어내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볼트나트들이 굳어진 초산비닐수지속에 묻혀버려 해체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구만. 어떤 사람들은 용접으로 정류탑의 단을 불어내자고 하는데 어떻겠는지.…》 하고 정준학지배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였다.
《초산비닐중합물자체가 인화성물질이기때문에 용접불을 들이대면 화재폭발이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한번 들어가보고 나오겠습니다.》
승혁은 탑속에 들어갔다가 잠시후에 나왔다.
《탑안에 초산비닐냄새가 꽉 차있습니다. 그러니 용접은 위험합니다. 내 생각엔 합성직장에서부터 증기관을 늘여 열을 가하면 초산비닐수지가 녹을것 같습니다. 그다음 볼트나트를 해체하면 될것 같은데요.》
《그렇구만.》 하고 지배인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방도는 단순하였지만 정준학지배인이나 한명산기사장은 승혁의 기술적인 조언을 무게있게 여기였고 꼭 듣고싶어하는것이였다.
《주아바인 편제없는 나의 교관이요.》 지배인은 껄껄 웃으면서 롱을 하였다.
《난 그저 경험을 가지고 해보는 늙은이지요.》
《늙어지지 않는 열정과 지향이 중요한게 아니겠소.》
정준학지배인은 중합직장건물곁의 공지를 가리켰다.
《저것 보오. 저기 있던 잔사처리공정건물이 없어지니 얼마나 시원해졌소. 공중으로 얼기설기 늘어져있던 배관들이 다 없어졌지, 그 공간을 중합직장에서 합리적으로 리용하여 저장조들을 앉힐수 있으니 좋고 시야도 탁 틔여 보기도 좋단 말이요.》
《꿩 먹고 알먹는 격이지요.》 한명산기사장이 께끼였다.
그들은 잔사처리공정에 대한 정당한 의견을 제기한 승혁의 공로를 응당하게 평가하는것이였다.
승혁은 자기를 믿어주는 말을 하는 지배인과 기사장을 고맙게 여기였다. 특히 그는 잔사처리공정을 두고 자기를 지지해준것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승혁은 잔사처리공정문제를 두고서는 그 어떤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느끼기보다 좌절당한 강혜경을 생각하면서 속을 태우는것이였다.
승혁이가 합성직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녀맹지원대가 찾아와서 붐비고있었다. 매일같이 숱한 녀인들이 지원로동을 하겠다고 쓸어드는데 미처 그 소속을 다 헤아릴수가 없었다.
건물보수를 하는 로동자들의 일손을 도와 오물처리를 하는 녀인들속에서 리정삼의 안해 안지향을 발견하게 되였다.
몸이 똥똥한 지향은 작업복을 팽팽히 입고 활기차게 웃으며 삽질을 하고있었다. 승혁은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비날론재생의 열풍속에 생의 보람을 찾는 또 한사람을 본것이다. 리정삼이도 이젠 당당히 개건투쟁의 앞장에 서있었다. 어제날엔 남편을 두고 불만을 터뜨리며 우울해있던 그의 안해도 성수가 나서 공장에 달려나왔다. 그런데 그 녀자는 앞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기업소개건으로 일이 끝나는것이 아닌것이다.
《철수 엄마도 녀맹지원대활동에 참가하고있구만.》 승혁은 지향에게 말을 붙이였다.
《내가 뭐 모자라는 녀자도 아닌데 한몫 해야지요 뭐.》 지향은 입을 가리우고 웃었다. 그 녀자는 인차 웃음을 거두고 말하였다.
《지원물자를 로동자들에게 주었어요. 이제 우리가 준비한 예술소조공연도 하자는거예요.》
《철수 애비가 저기 중합직장에서 일하고있는데 만나봤나?》
《예, 남편의 점심밥곽을 제가 싸가지고 나온걸요.》
《세대주가 있는델 가서 지원사업을 하면 좋지 않나?》
《조직이 있고 책임자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대로 하자고 하겠어요? 우리 녀자들도 합성직장이 비날론계통에서 심장부라는걸 알고있어요.》
《하긴 그 말도 옳아. 좌우간 가두녀맹원들이 좋은 일을 하는군. 로동자들에게 큰 힘이 될거요.》
승혁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철수 아버지가 속한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이 지금 사회주의경쟁에서 큰소리를 치고있소. 모두 각오가 보통이 아니요. 그건 철수 엄마도 잘 알겠지? 안해가 한전투대렬에 선 작식대원처럼 중요한 역할을 해서 남편들이 힘든 고비를 넘어서도록 해야 하오. 그리고 비날론생산공정이 일떠서면 철수 엄마도 공장에 다시 입직해야 하오. 철수 엄마야 수직방사직장의 고급기능공이 아니였소.》
《방사직장이 살아나 비날론을 뽑게 될가요?》
《사람들이 결사의 각오로 전투에 달라붙은걸 보오. 조만간에 비날론이 다시 쏟아질거요. 이건 우리 장군님의 철석의 의지이거던.》
《난 지금도 가끔 수직방사직장의 옛 기대에서 비날론을 뽑는 꿈을 꾸군 해요. 아바이, 고마워요. 지금껏 나에게 집안일은 녀자가 떠맡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았어도 다시 방사직장에 나와 비날론을 뽑으라고 말한 사람은 아바이가 처음이예요. 정말 하루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안지향의 두눈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안지향과 말을 끝낸 주승혁은 녀맹원들에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아낙네들이 왔구만. 반갑소.》
녀맹지원대 대장은 체격이 자그마하고 호리호리한 녀성이였는데 얼굴이 당돌해보이였다. 그 녀성은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승혁이가 초산비닐생산공정 시운전책임자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면 좋겠습니까?》
《우리 로동자들은 아주머니들이 그저 옆에만 있어주어도 힘이 되지요.》
《그럼 예술소조공연만 하랍니까?》
《그래도 되지요. 그래 공장에서 사내들을 보니 어떻습니까?》
《아니 아버님, 그건 무슨 소린가요?》 몸집이 우람찬 한 녀인이 끼여들었다.
《무슨 소리긴요. 말그대로 녀성들의 눈에 사내들이 어떻게 비쳐드는가 그 소리지요. 이전엔 돌아가지도 않는 공장에 나가선 뭘 하느냐고 남편들을 많이 구박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 남편들만 한 사내들이 없다고 자부할거웨다. 내 말이 맞소?》
녀인들이 까르르 옷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저마끔 말하였다.
《어쩌면 아버님 신통한 소릴 하네.》
《지금은 우리 남편님들이 막 고와죽겠어요.》
승혁은 느슨한 웃음을 짓고 다시 말하였다.
《장군님의 믿음을 받아안으면 모두 출중한 대장부들이 되는 법이라오.》
한바탕 웃으니 온몸에 힘이 차넘치는것만 같았다. 일떠서는 초산비닐생산공정, 비날론생산공정들의 거창한 움씰거림이 승혁의 온넋과 육체에 스며든다. 그때면 그는 온갖 잡념을 털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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