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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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2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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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실에서 거의나 밤을 패며 설계도면을 완성한 강혜경은 촉매직장을 향해 부리나케 걸음을 옮기였다. 비록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피로가 몰려들었으나 가슴에 차넘치는 자부심의 작용인지 마음은 날듯이 가벼웠다.
강혜경은 촉매생산공정건물설계를 담당하고있었다. 촉매생산공정은 원래의 위치에서 다른 지대로 옮겨 건설되고있었다. 강혜경은 촉매생산공정건물설계를 소박하면서도 품위있게 하였다. 지난날 잔사처리공정건물설계는 주변건물과는 차이나게 지내 화려하게 하였다고 스스로 자책하였다. 그것은 바로 남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내보이고싶었던 속된 욕망의 반영이라고 뉘우치게 되였던것이다. 그의 설계를 보고 설계실의 사람들은 왜서인지 더욱더 좋아하였다.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결 더 발전했어.》 하고 대견해하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혜경은 잔사처리공정건물을 설계하였을 때처럼 기쁨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때는 자랑스러웠지만 돌이켜보면 그 자랑이란것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철부지어린애가 느끼는 정도의 유치한것이였던듯싶었다.
지금 혜경은 자기자신이 한결 소박해진것처럼 생각되였다. 왜냐하면 그는 남들이 설계도면을 보고 칭찬할 때 통과되였다는 다행스러움과 동시에 쑥스러움을 체험하였던것이다.
잔사처리공정과 관련한 추억은 그에게 수치감을 안겨줄뿐이였다.
잔사처리공정건물을 없애기로 한 기업소참모부의 조치를 알게 되였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살점이 뭉텅 뜯기우는것만 같은 아픔이였다. 그는 남몰래 울었고 안타까와했다. 동정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동정은 더욱더 억울한 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것이였다.
그 감정은 너무나 무거운것이여서 쉽사리 뿌리쳐버릴수가 없었으며 그때문에 주승혁이 미안함과 따뜻함이 어린 목소리로 이겨내라고 일깨워주었을 때도 친근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것이다.
그러나 혜경은 리성적인 처녀였다. 그는 랭정하게 자신의 심정을 해부하였으며 성숙되지 못한 자신을 끝없이 타매하였다.
그는 주선철이 자기 아버지가 자중해주기를 바란다고 했을 때 함께 맞장구를 친 그 일을 스스로 용서할수가 없었고 자기같은 철부지에게 괴로움을 토설하던 승혁에게 밝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것으로 하여 더욱더 수치스러웠다. 그 아버님의 말에는 비날론공장의 미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맥박치고있었고 따라서 그의 충고는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을 명백히 가리켜주고있었다.
자기자신을 타매하면 할수록 혜경은 머리를 쳐들고 다닐수가 없었으며 주승혁을 보기만 해도 쥐구멍에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하여 그는 승혁을 피해다니군 하였다. 승혁이가 말없이 혜경을 꾸짖는 존재처럼 여겨졌던것이다. 바로 그와 같은 리유로 하여 그는 선철이도 피하였고 따라서 그들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혜경은 자기자신을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로 여기게 되였다.
그러나 점차 그는 바쁜 생활속에서 생의 보람을 찾으며 어제날의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어제 그는 촉매생산공정건물건설장에 나갔다가 일군들과 로동자들로부터 건물건설과 설비조립을 동시에 다그칠수 있도록 설계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말하자면 건물을 다 짓고나서 분해정비한 설비들을 들여놓고 조립하자면 날자가 많이 허비되기때문에 시일을 앞당길수 있는 방도를 찾아달라는것이였다.
그 의견을 성근하게 받아들인 혜경은 밤새 모지름을 쓰면서 철골구조물을 먼저 세울수 있게 설계도면을 만들었다.
혜경은 지금 그 도면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가는 길이였다.
문득 몇달전 잔사처리공정건물설계형성안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가던 길에 주선철을 구내도로에서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들뜨기만 했던 그 시절이 창피스럽게 생각되였다. 스스로 자신을 그 어떤 특출한 존재처럼 여기지 않았던가. 선철이가 얼마나 자기를 가소롭게 생각했을것인가.
하지만 선철이가 그리워진다. 현장치료를 나오는 선철을 다시 저 도로에서 만나고싶었다.
(좋은 사람이야. 난 좀 발칙스러운데가 있는데 참 점잖고 고상한 사람이거던.)
혜경은 자기를 비하할수록 선철이가 돋보이였다.
선철은 변함없이 비날론공장개건공사장들을 다니면서 지원로동에 참가하고있었다. 그러나 혜경은 설계실에 많은 일감이 밀려 저녁에 나가던 지원로동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자연히 선철을 만나기가 힘들어졌는데 선철은 혜경이가 자기와 만나는것이 싫어 피한다고 짐작하고있었다.
지나간 어느날 저녁 선철이가 설계실로 혜경을 찾아왔던적이 있었다.
그때 선철은 쓸쓸한 표정을 지은채로 왜 자기를 피하는가고 묻는것이였다. 선철이가 자기의 심정을 정통으로 찌르고드는것이여서 혜경은 당황하였다. 사실 그는 주승혁이도 그렇지만 그의 아들인 선철이도 만나기가 싫었다. 승혁은 승혁이대로, 선철은 선철이대로 자기의 천박함을 꿰뚫어보고있는것만 같이 느껴졌던것이다. 그 시기 혜경의 고뇌는 그렇게도 크고 심각하였다. 그는 혼자 있고만싶었다.
실은 선철이도 나름대로의 고민에 빠져있다는것을 혜경은 알수 없었다. 그는 잔사처리공정문제에서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못할짓을 했다고 죄스러움을 느끼였고 끝내 아버지의 주장이 관철됨으로 하여 혜경이가 타격을 받았다는 생각으로 혜경에게도 미안함을 느끼고있었다. 이렇게 복잡한 심리속에서도 혜경에게로 달리는 마음을 어찌할수가 없어 설계실을 찾아온것이였다. 그런 선철에게 혜경은 웃어보이였다. 《내가 왜 선철선생을 피하겠습니까. 그저 일이 너무 밀려서 그래요. 제기되는 설계도면들을 그리자면 하루시간이 모자라는걸요.》
자존심이 강한 처녀는 선철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싶지 않았다. 우선 자신을 정립하고 보다 떳떳한 인간으로 나서고싶었다.
《그렇게도 바쁩니까?》
혜경이가 머리를 끄덕이는데 선철의 얼굴은 정색하고 침착해졌다.
《알겠습니다. 혜경동무가 그렇게 바쁘다면 내가 방해해서야 안되지요. 동무가 바쁜 대목을 넘길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얼마나 기다려야 할가요?》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혜경은 방긋 웃었고 선철이도 따라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난 낮이나 밤이나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선철이를 돌려보내고나서 혜경은 도판과 마주앉았다. 그러나 당장 선철이를 부르며 달려가고싶은 심정, 그렇게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당장이라도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자고 말하고싶은 욕망과 싸우며 눈을 감았다. 잠시후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설계도면을 그리였다.
그후에도 혜경은 때때로 선철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리군 하였으며 그 그리움을 끄느라 또다시 자신과 싸우군 하였던것이다.
혜경은 촉매생산공정개건공사장에 도착하여 시공일군들에게 자기의 설계도면을 내놓았다. 그 도면을 들여다본 사람들이 환성을 올리였다.
《이렇게 되면 건물건설과 설비조립을 동시에 진행할수 있겠구만.》
《설계원동무가 우리 심정을 알아주니 정말 고맙소.》
《혜경설계원이 어련할라구. 강영식과장동지의 딸이 아니요.》
일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로동자들도 선망의 눈길을 보내였다.
혜경의 입가에는 오래간만에 긍지로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는 로동계급의 정신적욕구에 자신을 따라세우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동시에 누구앞에든 떳떳함을 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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