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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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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003회 작성일 23-07-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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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 회)

제 5 장

5

(1)


주승혁의 머리는 언제한번 쉬는 때가 없었다. 초산비닐생산공정설비, 장치물들이 조립단계에 들어갔으나 개건의 보다 높은 단계를 지향하는 그의 사색은 계속되였다. 당시 기업소에는 개건공사를 도와주기 위해 리과대학이나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에서 교원, 연구사들이 나와 활동하고있었다. 주승혁은 그들과 접촉하면서 현대화의 추세에 대해 자주 론의를 하군 하였다. 한번은 과학원의 한 연구사가 가지고나온 최신기술자료가 승혁의 눈에 띄여 그것을 빌려보게 되였다. 바짝 흥미가 동하여 밤새 그 자료를 들여다보는 과정에 그의 머리속에 초산비닐생산공정정류탑의 구조를 약간만 변경시키면 정류효률을 훨씬 높일수 있다는 착상이 떠올랐다. 그는 즉시 그 착상을 기업소 기술일군들과 설계일군들의 협의회에 제기하였다. 그 협의회에서 그의 의안이 정식 채택되여 설계실에 넘어갔다. 그렇다고 설계에만 맡겨놓고 마음편히 있을수가 없었던 승혁은 구조개선의 실천적가능성에 대해 알아보려고 설계실로 찾아갔다.

그는 담당설계원과 마주앉아서 설계에 대한 토론을 구체적으로 벌리였다.

《좌우간 주아바인 헐치 않습니다.》 나이지숙한 설계원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뭐가 헐치 않다는거요? 내가 자꾸 볶아대니 싫다는거겠지?》

《아바이의 요구성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는겁니다.》

《그게 내가 요구하는거요? 발전하는 현실이 요구하는거지.》

이때 방문이 열리면서 작업복차림의 강혜경이 들어왔다.

늘씬하고 그쯘한 체격의 혜경이 당황하여 허둥거린다. 인사를 하는 그의 얼굴이 딸기빛으로 빨갛게 타는데 볼에는 채 물들지 않은 흰 반점들이 몇개 보이였다.

승혁은 자기를 대하는 혜경의 태도가 편안치 않다는것을 느끼였다. 아직도 승혁이 자기에 대해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하고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괜찮다. 생각을 깊이하는것은 매사에 좋은 일이 아닌가.

《그동안 잘있었느냐?》 그는 애써 태연한 자세를 보이였다.

《예, 그런데 어떻게 여길…》 혜경의 부자연스러운 웃음속에 의아쩍은 표정이 어려있었다.

《응, 초산비닐정류공정설계를 좀 달리해보자는 의도에서 토론을 하던중이란다. 그래 너도 이 방에 있느냐?》

《아니, 요 옆방인데 일이 생겨서 왔댔습니다.》

《그래? 그럼 어서 들어올것이지 뭘 그러느냐. 우리 얘긴 끝난셈이다.》 승혁은 마주앉은 담당설계원에게 말하였다. 《이 강혜경이 말이요, 우린 오래전부터 구면이요. 내 강영식과장과 친구지간이다보니…》

승혁이가 부러 우선우선하며 말을 늘어놓는데 혜경이가 말하였다.

《마저 이야기를 하십시오. 전 후에 오겠습니다.》

승혁과 설계원이 다 끝났다고 소리를 쳤으나 혜경은 이미 문을 열고나가버리였다.

승혁은 어쩐지 가슴속이 허전하였다. 그는 혜경이가 우정 자기를 피한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넌 아직도 날 고깝게 여기고있구나.)

《혜경인 지내 례의가 깍듯하거던요.》 하고 설계원이 말하였다.

《지내 깔끔하니까 나이는 어려도 막말은 하기 어렵지요.》

《그건 뭐 처녀가 괜찮다는 칭찬이구만.》

《기특하지요. 2년전 장군님께서 현지지도하신 후에 우리 공장에 탄원한것만 봐도 보통이 아니지요.》

《실력은 어떻소?》

《그것도 보통이 아닙니다. 참, 잔사처리공정건물설계를 얼마나 훌륭하게 했댔는지 모릅니다. 그게 없어지는통에 아쉽게 되기는 했지만…》

《그러니 글쎄 혜경이가 나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가 있겠소.》 승혁은 짐짓 허거프게 웃었다. 《아마 날 보면 눈에서 불이 일거요.》

그는 우정 사태를 혹독하게, 자기자신을 억울하게 미움을 받는 불쌍한 존재처럼 과장하여 말하였다. 그는 자기와 마주앉은 나이지숙한 설계원에게서 부디 사실은 그런것이 아니라고, 아바이는 지금 무슨 오해를 하고있습니다 하고 위안해주는 그런 말을 듣게 되기를 바랐던것이다.

그런데 나이지숙한 설계원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하는것이였다.

《글쎄 혜경이가 승혁동지의 발기때문에 분하게도 됐지요. 아마 적지 않게 마음고생을 했을겁니다.》

승혁은 순간에 맥이 풀리면서 온몸이 나른해지는것만 같았다.


이날 오후 가소제직장건물앞 공지에서 3단계사회주의경쟁총화가 있었다. 순위권에 든 단위들이 꽃다발과 상품을 수여받았으며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경쟁총화가 있는 날은 온 공장이 명절처럼 흥성거린다.

시상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엔 자랑과 긍지의 웃음이 함뿍 어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선 축하의 말이 오르내린다.

상품들을 들고가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지돼지를 몰고가면서 《오늘 저녁 놀러오십시오.》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초청의 말을 하는 헤픈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그 돼지가 그만에야 왕청같은 곳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혼비백산해서 쫒아가는것을 보고 사람들이 즐거운 웃음을 터뜨린다.

세번째로 보수부문에서 1등을 한 김준선작업반원들이 갖가지 상품들을 앞에 놓고 꽃목걸이를 걸고 집체사진을 찍고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부러움이 어린 눈길로 사진찍는 광경을 구경하였다.

경쟁총화에 참가하였던 최성복은 김준선의 작업반이 사진을 찍는 장소에 슬그머니 가보았다. 그의 눈길은 작업반원들속에서 웃고있는 김송희에게 가멎었다. 처녀의 얼굴엔 한가득 기쁨이 어려있었다. 자기 작업반이 보수부문에서 1등을 하였는데 아버지가 직장장으로 있는 합성직장이 또한 생산부문에서 1등을 하였으니 남보다 기쁨은 더욱 클것이다.

송희를 보는 성복은 왜선지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였다.

(내가 아직도 송희에게 미련을 가지고있는것일가?)

그는 자기자신에게 조소를 보내였다. 순간 그는 송희와 눈길이 마주쳤다. 송희의 아름다운 두눈에 펑끗 불꽃이 일었다. 그들은 한순간 지그시 마주 쳐다보았다.

성복은 송희가 아직 자기를 생각하고있음을 똑똑히 깨달았다. 그러나 다음순간 송희 아버지 김명수가 《변절》기가 다분한 남자라고 하던 그 말이 우뢰처럼 귀전에 울리였다.

(내가 이럴 필요가 무엇인가?)

성복이 눈길을 돌리고 떠나가려는데 사진을 다 찍은 김준선이 그를 찾는것이였다. 성복은 반가운 웃음을 짓고 다가가서 준선에게 축하의 말을 하였다.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이 대단해요. 선군천리마를 탔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단 말이예요.》

《뭘 그렇게까지야… 그저 우리야 있는 힘을 다할뿐이지.》 준선은 어색하게 웃으며 담배 한대를 권하였다. 《그런데 요새는 왜 우리 작업반에 들리지 않소? 송희와 다투었나?》 준선은 다 알면서도 아닌보살하는것이였다.

준선이 송희에게 눈길을 돌려보니 송희는 성복이가 보라는듯이 작업반의 젊은 청년들과 롱담을 하며 웃고있었다.

《다투기야 뭐. 이전이나 같지요. 내가 일이 바빠서…》 성복은 말끝을 흐리였다.

《송희랑 다같이 사진 한장 함께 찍지 않겠소?》

《후에 찍지요 뭐.》

성복이 꽁무니를 사리려 하자 준선은 씨물씨물 웃었다.

《그럼 오늘 저녁 우리 작업반에 들리오. 한상 잘 차리겠소. 우리 로동자들은 콤퓨터화에 기여하는 선생들을 대단히 존경하니까.》

성복은 건성 례의적인 대답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허전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그는 방금전에 자기를 간절히 쳐다보던 송희의 그 뜨거운 눈길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엇때문에 송희와 사랑을 하게 되였던가고 지난날을 후회하는것이였다. 그저 그냥 동생처럼 가깝게 사귀는것으로 만족해야 했을것인데… 왜 사랑했단 말인가. 헌데 그 사랑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였단 말인가. 성복은 아무리해도 자기의 사랑을 분석해낼수가 없었다.

그는 괴로운 상념을 털어버리려는듯 머리를 흔들었다. 잊어야 한다. 송희 아버지가 나를 향해 던진 그 모욕의 대가를 고스란히 그들에게 던져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너는 비날론을 되살리는 투쟁에서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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