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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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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477회 작성일 23-06-2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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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제 2 장

9

(1)


제관직장에서 만들어진 생성반응기가 합성직장에 넘어와서 조립에 들어갔다. 주승혁은 생성반응기가 제대로 조립되도록 하기 위해서 늘 현장에 붙어있었다. 생성반응기조립을 지켜보다가 김준선의 작업반원들이 일하는 곳을 찾아갔다. 어제 저녁 안해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참고도서를 리정삼의 편에 보내라고 했었다. 김준선의 작업반원들은 정류탑보수를 마감고비에서 다그치고있었다.

김준선이 제가 용접을 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고 또 무엇인가 설명하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아마 젊은 용접공의 일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준선이가 똑똑하고 궁냥은 깊은데 성격이 좀 거칠단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리정삼을 찾아보았는데 웬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승혁은 망치를 들고 철판을 두드리는 준선의 어깨를 툭 쳤다.

《반장, 정삼이가 어디 갔나? 왜 보이지 않아?》

준선은 담배갑을 꺼내여 승혁에게 권하며 투덜거렸다.

《제기랄, 반장노릇 하기도 헐치 않군요.》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글쎄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리정삼이 이틀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남은 주먹만 한 카바이드덩어리를 집의 카바이드등에 쓰겠다고 슬그머니 가지고갔다고 한다. 주민지구에 전기가 제대로 오지 않는 형편에서 비날론지구의 주민들속에서는 충전등보다는 카바이드등이 요긴하게 쓰이고있었다.

다음날 이에 대해 알게 된 김준선이 작업총화시간에 리정삼을 호되게 다불렀다세웠다.

《정삼동무, 이건 어디서 하던 본때요? 카바이드가 좀 남았다고 제마음대로 집에 가져가다니… 이런 버릇이 자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뭘 그럽니까? 도제 주먹만 한겁니다.》 리정삼은 억울하여 제편에서 얼굴을 붉히며 대들었다.

《주먹만 하든 사탕알만 하든 마음대로 가져가는게 아니란 말이요. 알럼덤직장에 있을 땐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에선 통하지 않소. 알겠소?》

《너무합니다.》

《동무, 무슨 사설이 그렇게 많아? 고치오. 그리고 앞으로 사람질 하는 법을 잘 배워야겠소.》

이것이 어제 있은 일이였는데 오늘 정삼이 아프다고 출근하지 않았다는것이였다.

《분명 어제 내가 좀 비판을 했다고 해서 속이 꼬부장해진겁니다. 반장이 그만한 소리도 못하겠습니까. 제가 잘한게 뭐 있나요. 나이가 서른댓살이나 먹었다는게 아직 철이 없지요.》

《덜돼먹은 녀석…》 승혁이도 혀를 차며 욕을 했다. 《지금이 어느때라고 그따위 밸을 쓴단 말인가.》

《내가 퇴근하는 길에 정삼의 집에 들려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힘들겠는데 그만두오. 내가 한인민반에 사는데 찾아가보지.》

《아바인 요새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던데요?》

《이따금 들어가보군 하지. 녀편네가 집에서 고생하는데 돌봐주기도 해야지.》 승혁은 히죽이 웃었다.

《그런가요?》 준선이가 미덥지 않아하는 표정을 짓고 승혁을 보았다.

《하루빨리 설비제작과 보수를 끝내고 시운전에 들어가야겠는데… 사람들이 모두 합심해야 능률을 높일수 있지.》

승혁은 겉으로는 정삼을 욕하였지만 정삼이에게 동정이 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그녀석이 준선의 작업반에 갓 옮겨와서 가뜩이나 마음이 붙지 않아 하더랬는데 영 등을 돌려대는게 아닐가? 그러면 야단인데…)

그 순간 승혁의 귀전에는 비날론공장을 뜨지 않겠다고 하던 정삼의 목소리가 다시금 쟁쟁 울리는것만 같았다.

고난의 행군시기에 있은 일이였다.

승혁이네 집과 가까이에 철수라고 부르는 서너살잡이 애를 데리고사는 젊은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비날론공장 알럼덤직장 로동자였는데 그의 안해 안지향은 이웃간의 정때문인지 인민반장을 하는 영희를 무척 따르고있었다. 오동통한 몸집에 새까만 두눈이 또렷하고 이악스럽게 생긴 녀자인 안지향은 한때 수직방사직장의 기능공으로 성실하게 일하였으나 공장이 멎어서고 식량난을 겪으면서 집에 들어와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벌이가 잘 안되여 그의 집은 여러가지로 생활이 어려웠다. 지향은 가끔 자기가 언니처럼 여기는 백영희를 찾아와서 《슬픔》을 하소연하군 하였다. 그 《슬픔》속에는 자기 남편 리정삼에 대한 불평불만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있었다. 살줄 모르는 바보형의 남자, 이것이 지향이가 남편에 대해 내린 결론이였다. 바보형의 남자인데다가 집안살림은 생각지 않고 술을 좋아하니 이런 남자와 사는 녀자는 얼마나 불행한가고 지향은 한탄하는것이였다. 영희가 위로를 하면서 자꾸 남편의 흠을 잡을내기를 해서는 안된다고 교양도 하였으나 지향에게는 먹어들어가지 않는지 언제나 뾰로통해있군 하였다.

승혁은 남의 집일에 간참하는것이 싫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공장에 일다니는 남편을 우습게 보는 지향이가 괘씸하게 생각되여 한두마디 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꾸 술을 마신다는 리정삼의 처사가 안타깝게 여겨졌고 그때문에 그를 무작정 두둔하기도 딱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안지향이 밤에 아이를 업고 승혁의 집에 뛰여들어왔다. 지향은 남편이 술을 마시고 주먹을 휘두르는통에 집을 나왔다고 흐느껴울었다. 그는 자기를 따라 우는 애를 얼리면서 자꾸 눈물을 훔치였다.

《철수 아버진 미쳤어요.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요.》

애가 울고 애어머니가 우는것을 더 들을수가 없어 승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상에 덜돼먹은 녀석이로구나. 나와 함께 가자. 내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주어야지.》

승혁이 안 가겠다는 지향을 데리고 그의 집에 가보니 리정삼은 혼자서 술을 마시고있었다. 정삼은 풀어진 눈으로 승혁을 올려다보았다. 합성직장장 승혁은 정삼이가 어려워하는 사람이였다. 정삼은 가끔 인민반에서 조직하는 꾸리기사업과 같은 아침동원에 나가서 승혁을 만나거나 길가에서 만나도 언제나 깍듯이 인사를 하군 하였다. 그러나 승혁이가 자기 집에 찾아오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지라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졌고 다음엔 인차 정신을 차리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직장장동지가 어떻게? 무슨 일입니까?》

승혁은 정삼의 팔을 붙들어 앉히였다.

《사람이 그게 뭔가? 젊은 사람이 술에 취해 제 안해를 내쫓는단 말인가.》

정삼은 더부룩한 머리를 숙이고 거친 숨만 내불며 씨근거리였다.

《내앞에서 어디 말해보오.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러는거요? 철수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정삼이가 밥상우에 놓인 술고뿌에 손을 뻗치려는데 승혁이가 고뿌를 빼앗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또 술이요?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는 뭘해? 술독에 빠진 인생, 정말 가련하구만. 완전히 타락했소. 쓸개빠진 녀석같으니라구.》

《뭐, 내가 타락했다구요?》 정삼이가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풀려있는듯싶었던 그의 두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내가 쓸개빠졌다구요?》

정삼이가 격분하여 소리질렀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직장장동지, 어디 한번 가르쳐주십시오.》 정삼은 자기의 가슴을 두드려댔다. 《녀편네는 나더러 공장을 그만두라는데… 공장을 그만두고 장진군에 사는 처형네한테 가서 살자고 하는데… 그래 내가 녀편네말에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는겁니까?》 승혁은 그 어떤 보이지 않은 몽둥이가 자기 머리를 후려갈기는것만 같았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제 언니네는 배부르게 먹으면서 산다고… 거기 가면 우리도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거라면서… 예?… 그런단 말입니다.》 정삼의 두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여윈 뺨을 타고 굴러내리였다. 《그래 내가 비날론공장을 버려야 합니까. 난 그렇게는 못하겠단 말입니다. 비록 지금은 돌아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무때건 돌아갈게 아닙니까.》

승혁은 가슴이 찌르르해져서 정삼을 쳐다보았다.

아, 이 젊은이의 가슴에 그렇듯 뜨거운 사랑이 간직되여있었단 말인가. 아, 얼마나 속이 탔으면 네가 술을 마시고 안해를 내쫓았을것인가.

정삼은 계속하여 설분을 토로하였다.

《우리 아버지가 이 비날론공장에서 반생을 바쳤고 난 아버지의 뜻을 이어 한생을 바치려고 했습니다. 지금 비날론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다 떠나들 가면 이제 공장은 어떻게 됩니까.》

《그래, 그래.…》 승혁은 머리를 숙이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리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 내 미처 그런 일이 있었는줄은 몰랐소. 내가 경솔한 놈이요. 아녀자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으니…》

문득 승혁의 눈앞에는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인차 림종시의 모습으로 번져진다. 자기에게 설비가 무사하다면서 마지막미소를 던지고 눈을 감았던 형, 한생 비날론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살았고 마지막순간까지 그 사랑을 안고 숨진 형님이였다.

만약 정삼의 가슴속을 헤쳐본다면… 그속엔 형님과 같은 그런 심장이 뛰고있지 않을가?

그렇다. 정삼에겐 불타는 심장이 있다. 버릴수도 없고 바래지지도 않는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비날론로동계급의 긍지와 자부심과 깊이 련관되여있는것이였다. 승혁이가 합성직장에서 책임기사로 일하던 시절에 전국에서 수많은 견학생들이 합성직장에 찾아왔었다. 그는 그들을 안내하여 합성직장의 기술공정들을 설명해주면서 직장에 깃든 수령님의 령도사적에 대하여 뜨겁게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그의 해설을 듣고 많은 견학생들이 감동의 눈물을 머금었으며 비날론공업의 심장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토로하군 했다. 그때는 온 나라 사람들이 비날론공장 사람들을 부러워 선망의 눈길을 보냈었다. 그 나날에 비날론로동계급의 긍지와 자부심도 커질대로 커졌던것이다. 그 긍지와 자부심속에 비날론에 대한 사랑도 더욱 커졌다.

승혁은 여윈 몸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리정삼의 가슴속에 검질기게 남아있는 그 긍지와 자부심을 깊은 감동을 안고 들여다보는것이였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난 직장장이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너보다는 모든 면에서 유리한 조건에서 생활하였지. 너는 평범한 로동자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녀편네한테 구박을 당하면서도 그 긍지와 자부심, 그 사랑만은 버리지 못하는 너는 얼마나 고결한 사내인가!)

승혁은 방문을 열고 밖에 대고 말하였다.

《철수 엄마, 어서 여기 들어오오.》

승혁은 그때까지 밖에서 집안동정을 살피고있던 안지향을 불러들이였다. 지향은 어느새 잠든 애를 안고 잔뜩 겁기가 어린 얼굴로 들어와 앉았다.

《철수 엄마, 내가 이 집 세대주를 잘못 보았댔소. 철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요. 이런 사람을 싫다하면 안되지. 일시적인 곤난을 겪는다고 해서 남편에게 자꾸 바가지를 긁으면 어떻게 하겠소. 잘못됐소. 철수 엄마가 확실히 잘못했소. 다시는 그러지 마오. 공장에 나가 일하는 남편을 잘 도와주어야 하오.》

지향은 머리를 떨구고 울먹거리였다. 《난 사실 생활이 너무 어렵다보니…》

《이겨내야 하오. 이겨내고 비날론공장을 지켜야 하오. 내 오늘 철수 아버지에게 감동됐소.》

승혁은 방구석에 내려놓았던 술고뿌를 상우에 올려놓았다.

《철수 엄마, 부엌에 나가 고뿌를 하나 더 내오우. 내 철수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 한잔을 들겠소.》

승혁은 정삼에게 술을 부어주었다.

《정삼동무.》

승혁은 처음으로 정삼을 동무라고 불렀고 정삼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정삼동무, 이 술 한잔을 들고나선 다신 그렇게 술을 마시지 마오. 비날론을 지키는 사람은 그렇게 사는게 아니야. 내 이제부터 정삼동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통제를 해야겠소. 싫어하지 마오. 동무같은 사람이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고 일도 잘되여야 하는거야. 철수 엄마도 명심해서 듣소. 다시 세대주를 괴롭히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소.》

《고맙습니다, 직장장동지.》

정삼은 눈물을 흘리며 술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고맙긴… 내 이제부터 이 집의 아저씨노릇을 해야겠소.》 선웃음을 터뜨리는 승혁의 두눈에도 눈물이 어려있었다.

이때 잠에서 깨여난 애가 눈을 뜨더니 《큰아버지-》 하고 불렀다. 철수라는 그 애는 자기를 고와하는 승혁을 잘 따르고있었다. 승혁은 그애를 지향의 손에서 받아안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큰아버지가 여기 있다.》

지난날에 있은 일을 돌이켜보면서 승혁은 량심의 가책을 느끼였다.

(스스로 아저씨노릇을 한다던 네가 정삼이네를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말은 그럴듯하게 잘한다만…)

승혁은 자기자신을 비웃으며 준선에게 말하였다.

《반장이 앞으로 정삼이를 잘 이끌어주오. 사실 그가 영 시라소니는 아니야. 무엇보다 내가 좋게 생각하는것은 정삼이가 그래도 공장에 대한 정이 깊다는거야.》

승혁은 머리속에 떠오른 지난날의 일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요. 난 아직 정삼이를 잘 모르는것 같아요.》 준선이 짓적게 웃어보이였다. 그의 얼굴엔 자책기가 어려있었다.

《됐소. 빨리 일을 다그쳐주오. 이 부분을 특히 잘 만들어야겠소.》

승혁은 준선에게 도면을 펼쳐놓고 주의할 점을 지적해주었다.

저녁퇴근시간이 되여 승혁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였다. 자연히 생각은 오늘 출근하지 않은 리정삼에게로 향한다.

(그가 공장이 돌아가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런데 개건투쟁이 힘차게 벌어지는 오늘에 락후분자가 되여서야 되겠는가. 안될 말이지. 사내녀석이 꽁하거던.)

승혁은 문득 최성복의 얼굴이 떠올랐다

(성복이는 어떻게 지내고있을가? 그녀석을 빨리 데려와야겠는데…)

승혁은 자기가 애착을 느끼고있는 사람들이 제가닥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리는것만 같아 마음이 아파왔다. 모두 한몫을 할수 있는 젊은이들인데… 비날론공장과 떨어져서는 살수 없는 사내들인데… 지금 허튼 생각을 하면서 방황하고있는 꼴이 아닌가.

(최성복인 아직 철이 덜 들었어. 제 아버지 최영빈이가 살아있었으면 아마 착실하게 공장을 지켰을거야.)

승혁은 모든것이 자기의 책임인것처럼 느껴졌다. 그럴수록 그는 정삼이를 꼭 안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하게 되는것이였다.

승혁은 정삼의 집 대문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에서 정삼의 안해가 야살을 까는 소리가 돌려왔다.

《사람이 할말은 하면서 살아야지요. 집에 와서 끙끙 앓으며 녀편네한테나 해보면 뭘해요.》

그에 잇달아 무엇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정삼의 성난 목소리가 벼락같이 터져나왔다.

《나가라, 보기 싫다.》

(일이 심상치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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