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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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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380회 작성일 23-11-05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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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회)

제 2 장

왕관없는 녀왕

1

(1)


조선주재 일본대리공사인 스기무라 후까시서기관은 창밖을 내다보며 감상적으로 말했다.

《하늘이 흐린걸 보니 또 눈이라도 오려는가봅니다.》

안락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아있는 30대의 다까하시부인 나쯔미는 스기무라서기관이 자기를 찾은 영문을 알수 없어 그저 덤덤히 있었다.

그는 몸집이 가량가량한 이 스기무라를 대할 적마다 매끄럽고 징그러운 뱀처럼 여겨져 어쩐지 몸이 오싹해지는감을 느끼군 하였다.

《옥상, 한성은 우리 도꾜보다 눈이 많이 내리지요? 또 춥고…》

《예.》

자기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고 계속 말하는 스기무라의 속심을 알수 없어 다까하시부인은 더욱 긴장되였다.

《난 조선서 14년째 근무하지만 추운건 딱 질색입니다.》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고생까지야…》비로소 스기무라는 나쯔미쪽으로 돌아섰다.

《아무튼 나는 오늘까지 월급쟁이노릇을 하고있습니다. 한데 다까하시상은 조선에 온지 몇해밖에 안되지만 벌써 대단한 부자가 됐지요. 부인?》

다까하시 나쯔미의 남편 다까하시 겐지는 남대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매약상이였는데 조선인삼장사로 폭리를 얻더니 이제는 쌀장사 등 못하는 장사가 없었다.

스기무라서기관이 나를 부른 목적이 이것이로구나 하고 짐작한 나쯔미는 송구스럽기도 하고 게면쩍기도 한 표정을 띠우며 어줍게 입을 열었다.

《저, 주인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주인도 서기관님을 모른체 하진 않을겁니다.》

스기무라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

나쯔미는 눈이 둥그래졌다.

이윽고 웃음을 멈춘 스기무라는 흰 손수건을 꺼내 눈굽을 찍고나서 말했다.

《부인은 제 맡을 오해하는군요》 스기무라의 표정은 정색해졌다.

《부인, 오늘 대보름명절에 명성황후의 초청으로 궁성으로 간다지요?》

《예.》

나쯔미는 얼결에 대꾸했다.

《아, 기쁘겠습니다. 우리 처도 초대를 받았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본국에 가있어서…》

《…》

이야기가 갑자기 뒤바뀌는 바람에 나쯔미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스기무라는 나쯔미앞에 마주앉았다.

《옥상도 알다싶이 조선의 명성황후는 희세의 녀걸이라고들 합니다. 조선에 국왕도 있고 또 국왕의 부친인 대원군도 있지만 조선의 실제적통치자는 명성황후, 그 녀인입니다. 하기에 명성황후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지는가 하는것은 우리 일본에 있어서 실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스기무라는 나쯔미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나쯔미도 좀 긴장해졌다.

《옥상은 명성황후가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생각하는가, 특히 우리 일본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떤가를 알아내야겠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일거일동을 잘 살폈다가 나에게 알려주어야겠습니다.》

이제야 스기무라서기관이 자기를 찾은 까닭을 완전히 알게 된 나쯔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스기무라는 다까하시부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 눈초리에 예기가 질린 나쯔미는 고개를 떨구었다.

《부인도 우리 제국의 국민인것만큼 대일본제국의 국익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쯔미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기무라가 깍듯이 목례를 하였다.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선 나쯔미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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