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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조선의 힘》 제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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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951회 작성일 23-08-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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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1 편

13


9월 25일 오후 2시 10분, 맥아더는 도꾜에서 뜻밖의 충격적인 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은 맥아더자신이 쓴 다음과 같은 화려한 문구로 시작되였다.

《자비로운 신의 보호에 의하여 인류최대의 희망과 열망의 상징인 우리 유엔군은 드디여 서울을 탈환하였다.…》

그러나 그시각 미1해병사단은 서울의 서북쪽 마포, 신촌에 머물러있었으며 제일 앞서 전진했다는 5해병련대도 서대문신학교부근에서 저지되고있었다. 하나의 바리케트진지를 돌파하는데 3시간이상 걸렸다. 그런데 바리케트진지는 서울시 중심부에 접근하면서 그 간격이 200m로 좁아졌다.

한편 서울의 동남쪽 서빙고로 공격한 미제7보병사단은 왕십리방향과 장충단에서 인민군 기계화보병부대의 맹렬한 반격에 의해 3km이상 퇴각하였다. 치렬한 전투는 다음날과 그다음날에도 계속되였다. 서울시가는 충천하는 화재의 연기와 화염속에서 밤과 낮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적기들은 하루에도 수백회이상 출격하여 미친듯 폭탄을 퍼부었다. 이 시기 적들의 155mm곡사포는 포 한문당 하루 50상자씩의 포탄을 발사함으로써 2차대전의 기록을 돌파했다. 차츰 서울시는 불바다로, 재더미로 되여갔다. 그러나 그속에서도 인민군대와 서울시민들은 불사신처럼 싸우고있었다.

그러한 어느날 김일성동지께서는 문화선전상 허정숙이 서울에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보시던 사업을 미루고 즉시 그를 부르시였다.

…곤색 세루양복을 입은 허정숙의 동그스름한 얼굴은 볕에 타서 좀 여윈듯 했다. 눈밑엔 전에 없던 주름이 패웠고 옷에서는 희미한 화약내가 풍겼다.

허정숙은 그간의 사업정형을 자세히 보고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보고가 끝나자 그를 자리에 않도록 권하시였다.

《그동안 서울에 나가서 수고가 많았소. 앉소. 편안히 앉아서 그동안 서울에서 보고들은것을 좀 말해보오.》

《장군님!》 허정숙은 이야기에 앞서 먼저 마음의 충동을 이기기 어려워하는듯 했다. 《다들 무섭게 싸웠습니다, 정말 무서운 싸움이였습니다!》

《무서운 싸움이라…》

《예, 온 서울시가 다 떨쳐나섰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인민군대를 도와 손에 총을 들고 싸우기도 하고 놈들의 폭격과 포격을 무릅쓰고 군수물자를 운반하기도 하였습니다. 한쪽에선 바리케트를 쌓고 다른쪽에서는 부상병들을 간호하면서… 정말 전인민적인 방어전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영등포에선 여라문명의 녀성들이 치마폭에 식칼을 싸안고 밤중에 적진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사람도 살아나오지 못했습니다.…》

허정숙은 깍지낀 두손을 힘껏 부르쥐고있었다. 떠나온 서울이, 피흘려 싸우는 그곳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그를 흥분케 하고있었다.

《계속하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시자 그는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한번은 제가… 마포구의 한강기슭에 나가있었는데… 미국놈들이 미친듯 포사격을 퍼부은끝에 대안에 상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인민군병사들이, 부상병들까지 수류탄을 잡고 나갔습니다. 그중엔 앞못보는 부상병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시민들이, 부상병을 나르던 녀학생들까지 다 삽이며 지레대며 닥치는대로 들고 또 맨 빈손으로 무섭게 쓸어나갔습니다. 그날… 놈들은 끝내 쫓겨갔습니다. 그 무서운 기세에 혼비백산해서 달아나버렸습니다.》

허정숙은 목구멍에 그들먹이 차오르는것을 꿀꺽 삼켰다. 어느덧 두눈에서 눈물이 끓고있었다.

《그곳을 떠나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허정숙의 눈물이 어린 그리고 고통스러운 그림자가 뿌옇게 서린 얼굴을 심각히 바라보실뿐이였다. 허정숙이 계속했다.

《저도 그들처럼 끝까지 거기 남아서 싸우고만싶었습니다. 그러다 죽더라도 그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서울것이 없을것 같았습니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아무 말씀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하늘이 잔뜩 흐려지기 시작했다. 서쪽하늘에서 산더미같은 구름이 점점 커가면서 밀려오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가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바람질에 부대끼고있는 정원의 정수리높은 백양나무를 바라보시였다. 웬일인지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부지중 처음 허정숙을 만나던 때가, 그날의 허정숙의 인상적인 모습이 떠오르시였다.

1945년 12월 어느날이였다. 해방산언덕의 집무실로 김책이 허정숙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날의 허정숙은 홀쭉하니 여위고 볕에 까맣게 탔었다.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무정 등과 같이 여러달동안이나 중국동북지방의 일본군패잔병들과 싸우며 행군해왔던것이다.

그래도 그는 람루한 군복상의를 쥐여당기며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오랜 전투생활에서 몸에 익힌 동작이였다. 사실상 허정숙은 1930년초 광주학생사건혐의로 아버지 허헌과 함께 체포되여 4년간 옥고를 치른후 전부터 알고있은 김책을 찾아 장군님유격대에 입대하겠다고 분연히 만주로 들어갔다. 그러나 김책의 연줄은 찾지 못하고 중국관내인 한구에서 주은래를 만나 그의 주선으로 연안에 갔으며 그후 오래동안 주덕휘하의 서북전선군부대들에서 선전공작을 했던것이다.

허정숙은 절도있게 거수경례를 했으나 그만 울음이 북받쳐 제대로 인사를 올리지 못하고말았다.

《장군님! 그간 고생인들 얼마나 많으셨습니까!…》

그이께서는 오열에 떠는 그의 두손을 다정히 잡아내리시였다.

《이러지 마오. 동무의 소식은 다 들었소. 연약한 녀자의 몸으로 10여년간 군대생활을 하였으니… 참 장하오. 자 그만하라구… 그리고 이제부턴 군대식경례를 하지 않아도 돼.》

그이께서는 곁에 있는 김용범, 최용건, 오기섭 등에게 허헌선생의 따님인 허정숙동무라고 친히 소개해주시였다.

담차고 정열적인 녀성활동가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헌신분투하는 의지와 기백을 귀중히 여기시였다.

허정숙은 처음 《정로》신문의 초대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장막염에 걸려 생사기로에 처한 일이 있었다. 그때 현지지도의 먼길에서 돌아오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병자가 있는 합숙방으로 곧장 가시였다. 불덩어리같은 그의 머리를 짚어보시며 왜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보고도 하지 않았는가고 일군들을 책망하시였다. 젊은 녀성동무가 설한풍속에서 왜놈들과 싸우다 조국에 돌아왔는데 죽어서야 되겠는가, 왜놈들도 못죽인 혁명동지를 병에 걸려 죽게 해서야 되겠는가고 준렬히 말씀하시였다. 그날 시간이 너무 경과하여 의사들이 자신없어한다는것을 보고받자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책임지겠으니 빨리 수술하라고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오랜 시간에 걸친 어려운 수술이 끝나고 허정숙은 다음날 낮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다시 한달후엔 배에 고무호스를 꽂고있는 상태그대로 병원문을 나서기까지 했다. 해방직후의 그 어렵고 복잡한 정세하에서 할 일은 산더미같은데 준비된 일군들은 부족하여 장군님께서 한시도 편히 쉬지 못하시는것을 생각하니 누워있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얼마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거쳐 공화국정부의 첫 녀성상으로까지 자랐다. 그런데… 그처럼 결패있고 헌신적인 일군인 허정숙이 손에 총을 들고 바리케트진지에 나가 싸우고싶다고 하고있다. 자기에게 지워져있는 무거운 책임은 다 잊고 한 전투원으로서 용감히 싸우다 죽고싶다는것이다. …

밖에서는 세찬 바람질이 시작되고있었다. 찧고 까불던 새들은 바람에 불린듯 사라져버리고 성깃성깃해진 나무가지들만 태질하고있었다. 비방울이 후둑후둑 창유리를 때렸다. 그러나 멀리 찢겨진 구름장틈으로는 파아란 하늘의 한귀퉁이가 열리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두워졌던 창밖이 훤해질무렵에야 탁자로 돌아오시였다. 허정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꼿꼿이 서있었다. 얼굴은 벌거우리하게 상기되여있었다. 눈물자욱도 없다. 방금전에 그를 휘여잡고있던 심리적돌림병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는 꼿꼿이 선채로 조용히 그리고 절절하게 말씀올렸다.

《장군님! 제가 그만… 용서하십시오.》

그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더 큰 아픔을 안고계시는 장군님의 마음을 순간이나마 괴롭혔다는 자책때문에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숨을 들이그을 때마다 앞가슴이 세차게 오르내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다정히 바라보시였다.

《허동무, 지금 많은 중요한 사업이 문화선전상인 동무를 기다리고있소. 그래서 급히 소환했던거요.》

허정숙의 두눈이 확 불타올랐다.

《장군님!》

《지금같이 어려운 때 문화선전상인 동무는 무엇을 해야 하겠소? 격전장에 나가 직접 총을 쥐고 싸우겠는가. 아니면 전투원들을 고무하겠는가?… 그렇게 할 사람은 많소. 총쥔 사람들도 많고 구분대마다 선전원들도 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문 서울을 떠나는것이 괴로왔다고 하오. 전투장에서 목숨바쳐 싸우고싶다고 했소. 물론 그 심정은 나도 리해하오. 그러나 허동무! 당이 동무에게 맡긴것은 어느 도시의 바리케트진지가 아니요. 당은 동무에게 우리 인민군대가 후퇴를 하고있는 이 준엄한 시기 전체 인민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는 중대한 일에서 한몫 맡아줄것을 바라고있소. 지금 적들은 우리 공화국이 망하는것은 시간문제라고 떠들고있소. 거기에다 온갖 동요분자, 비겁분자들이 나타나고있소. 이럴수록 우리는 전체 인민을 더 굳게 결속하고 궐기시켜야 하오. 우리는 전인민적인 항전으로 침략자들을 격멸할것이요. 그러니만큼 허동무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오. 온나라 전체 인민을 성전에로 궐기시키시오. 당은 동무에게 이 중요한 사상전선을 맡겨주었소. 이 전선의 사령관이 바로 문화선전상인 동무요!》

허정숙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벅찬 격정의 파도가 그의 온몸을 뒤흔들어놓은것 같았다. 그는 경련적으로 입술을 떨며 부르짖었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하여 신문, 통신, 방송사업을 틀어쥐고 이를 통하여 적들이 벌리는 기만선전의 허위성을 폭로하며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의 투쟁을 적극 고무추동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어떤 경우에도 신문과 방송이 중단되여서는 안되며 문학예술사업도 잘 조직해야 한다는것, 한편의 시와 노래가 천만사람의 심장을 격동시킨다는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윽고 접견은 끝났다. 세찬 충격을 받은 허정숙은 다함없는 신뢰와 경모의 정으로 그이를 우러러 섰다. 분망하신 그이께 곧 인사를 올리고 물러가려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도 가까이 다가가시였다. 그때였다. 허정숙이 놀라며 저도모르게 한손을 입가에 가져갔다.

《장군님!-》

속삭임소리와도 같은 가느다란 부르짖음이였다.

《왜 그러오?》

《장군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허정숙의 눈시울이 바르르 떨리고있었다. 《어쩌면 장군님께선 그렇게 조갈이 드신줄도 모르고…》

《?!…》

김일성동지께서는 천천히 머리를 돌리시였다. 지금 허정숙은 녀성다운 그 세심한 눈으로 그이께서 불편하신 몸을 참고 이겨나가시는줄 알아차린것이다. 그이께서는 탁자우의 서류에서 무엇인가 찾으시려다가 찾지 못하고 또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다가 그만두시였다.

《뭐 별거 아니요. 잠을 좀 설쳤더니…》

《아닙니다. 장군님! 장군님께선 편치 않으신 몸으로…어쩌면 그리도 신상을 돌보지 않으십니까?!》

《고맙소. 하지만 너무 걱정마오.》

《안됩니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알겠소. 다 안다니까. 이제 곧 군의국을 부탁하지.》 그이께서는 탁자를 에돌아가시여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이렇게 하면 되겠소?》

눈물어린 허정숙의 두눈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울고 웃으며 《장군님! 그럼 전 돌아가겠습니다.》하고 인사드린 후 집무실을 나갔다.

《장군님! 부관장 전화받습니다.》

강부관장은 벌써 같은 말을 세번째 거듭하고있었다.

《남일동무가 아직 안왔소?》

《장군님! 지금 기다리고있습니다.》

시계처럼 정확한 남일이였다. 잠시후 남일이 방에 들어섰을 때 그이께서는 지도를 펴고계시였다.

《무슨 새소식이 있소?》

《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머리를 돌리시였다.

《어서 말하오.》

《장군님!》 남일은 흥분어린 목소리로 보고드렸다. 《지금 서울지역의 방어부대들은 미아리고개에서 강력한 반돌격을 진행하고있습니다. 방금 련락이 왔습니다. 적의 공격은 좌절되였습니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남일의 얼굴만 견주어보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아시였다. 이로써 영웅적인 인천, 서울지구 방어작전이 끝나는것이다.

9월 28일 저녁 8시였다.…


다음날 새벽 남일은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릴 중대한 소식을 가지고 부관실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강부관장과 잠을 못자 부석부석해진 기술서기 오영혜가 있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고개를 떨구고있다가 남일이 들어서자 머밋거리며 인사를 했다.

《장군님께선 계시오?》

남일의 물음에 강부관장이 대답했다.

《밖에 계십니다.》

《…》

산책을 하시는것이라고 남일은 생각했다. 그러나 어쩐지 강부관장이나 오영혜의 기색이 이상하여 또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소?》

《아닙니다. 저…》

강부관장은 대답을 흐렸다. 그러나 남일의 엄한 눈길과 마주치자 곧 자세를 바로하였다.

《장군님께선 지금 고열로 신고하시면서도 지난밤 또 밤을 새우셨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선… 우리더러 자신께서 앓으시는데 대해 절대 말내지 못하게 하시니… 이 오영혜동문 그게 너무 안타까와…》

그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래서 오영혜가 눈물에 젖어있다는것이였다.

남일은 놀랐다. 부관실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강직하고 침착하며 주도세밀하다고 한다. 타고난 군사일군처럼 군복은 대번에 몸에 어울리며 또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그 무엇도 숨기지 못하리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기술서기 오영혜가 눈물짓는 그 크나큰 아픔도 모르고있었다. 그 누구보다 더 장군님과 사업상련계가 잦으면서도 전혀 감촉하지 못했었다.

그는 쏘파에 걸터앉았다. 그의 표정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오영혜는 마치 지뢰원이라도 걷는듯 발끝걸음으로 한쪽구석에 물러섰다. 순진하고 명랑하던 오중성의 조카딸, 처녀는 남일이 무섭게 쏘아보는통에 어깨를 잔뜩 옴츠렸다.

《장군님께서 앓고계신지 오랬나?》

《예, 벌써 사흘째나…》

《음-》

남일은 처음으로 장군님께서 겪고계실 크나큰 아픔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이상한 일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한때 쏘련의 침켄트시 교원대학 수학상급교원이였으며, 해방후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교육국 부국장, 교육성 부상 등으로 다년간 교육사업에 종사해온 남일은 난생처음으로 쓰라린 자책감으로 머리를 떨구었다. 그는 부끄러웠다. 가슴이 뜨끔하였다. 지금 그 누구보다 더 큰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겪고계시는분이 바로 우리 장군님이시라는것을 별안간 어이는듯 아픈 마음으로 깨달았던것이다.

엊저녁에도 그이께서는 인천-서울방어작전이 끝난데 대한 보고를 받으시였다. 그것을 바로 남일이 보고드렸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창가에서 소리없이 불타는 먼 하늘가의 번개를 바라보시면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군대는 서울시민들의 지원밑에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의 공격을 14일동안이나 저지시켰소. 그리하여 우리의 전선과 후방의 련계를 끊으며 락동강전선의 우리 주력부대들을 〈포위소멸〉하려던 적들의 모험적인 침략기도를 완전히 분쇄하였소. 이것은 우리 인민군대와 우리 인민이 거둔 거대한 승리요!…》

그때 남일은 그이의 모습에서 굳센 확신과 희망의 빛 이외의 아무것도 보지 못했었다. 그이께서 앓고계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웬일인지 목이 탔다. 남일은 차대우의 주전자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오영혜가 재빨리 유리고뿌를 들었다. 그러나 남일은 주전자를 손에 든채 또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그의 시선은 벽에 붙인 한장의 지도에 못박혀있었다. 크지도 않은, 책장 두장 합친것만 한 조선지도, 오영혜가 정성들여 그려붙였다는 지도이다. 전날 우리 인민군대가 해방한 남반부의 수많은 도시와 마을들에 작은 기발들이 빼곡이 그려져있다. 매일 최고사령부보도를 들을 때마다 하나씩, 둘씩 그려넣은것들이다. 그때마다 장군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보아주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 저 락동강에서 우리의 련합부대들이 후퇴해들어오고있는 오늘 저 지도는 장군님의 심중에 또하나의 큰 아픔으로 새겨질수 있다. 왜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가?…

차대우에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남일은 손에 들고있는 주전자에서 물이 쏟아져내리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차대우에 그리고 격자무늬 마루바닥우에 물이 흘러 즐펀해졌다. 오영혜가 질겁한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강부관장이 다가와 비여가는 주전자를 받았다. 그러나 남일은 여전히 지도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요즘도 장군님께선 저 지도를 보실테지?》

《예.》

남일은 처녀에게 한손을 내밀었다.

《가져오라구.》

처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비로소 그도 까닭을 안듯싶었다. 오영혜의 애끓는 눈망울에서 한점 불빛이 흔들거렸다. 그는 남일의 꿋꿋한 얼굴과 벽에 붙인 지도를 번갈아보다가 잰 걸음으로 다가갔다. 압정을 떼고 약간 누래진 지도를 가져왔다.

남일은 이윽토록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정히 접어서 처녀에게 내밀었다.

《이건 동무가 건사해두오.》

《예.》

남일은 일어섰다. 장군님께서 계신 곳으로 급히 나갔다. 그는 경위련대병영이 있는 숲속에서 보위색 상의를 어깨에 걸치고계시는 장군님을 뵙게 되였다.

숲가는 호젓했다. 개암나무, 오리나무, 단풍나무잎사귀들이 찬이슬에 흠씬 젖어있었다. 가지를 넓게 펴든 소나무의 바늘잎사귀에도 이슬이 구슬처럼 꿰여져있었다. 그이께서 신고계시는 장화목에도 풀이슬이 번들거렸다.

여기서 밤을 밝히신것이다. 그이께서 밟으신 발자국들이 도처에 찍혀있었다. 해묵은 가랑잎들이 짓눌린 자국, 진흙이 게발린 원추리며 쑥대, 그 발자국마다에 널려진 나무잎사귀들… 지금도 그이께서는 찔광이덤불을 마주하고 하나하나 잎사귀들을 뜯고계시였다. 누렇게 퇴색한 잎사귀들이 련이어 떨어져내렸다.

남일은 숨을 죽이고 서있었다. 부지불식간에 가슴속이 찌르르해졌다. 그이께서는 남일의 발걸음소리도 듣지 못하신것이였다. 여전히 찔광이잎사귀를 뜯고계신다…

남일은 가슴이 뻐근해났다. 언제나 침착하고 태연자약하신 그이만을 뵈워온 그로서는 그 무수한, 두서없는 발자국들을 찢기는듯 한 아픔없이 바라볼수가 없었다. 축축한 땅우에 마구 찍혀있는 발자국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느라니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남모르게 커가고있던 고민이 동아줄처럼 목구멍을 비틀었다. (내가 무슨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인가? 매일 매시각 장군님의 아픔은 커가는데… 이렇듯 속수무책으로 있으니 어떻게 그 막중한 사업을 계속 붙안고있을수 있단말인가?!…) 그는 자기가 가슴아픈 보고를 드리는것으로부터 첫 사업을 시작했었다는것을 다시 상기했다. 그러자 숨이 막히는듯 했다. 어제나 오늘처럼 래일도 역시 그러한 아픔만을 자기가 더해드릴것이라고 생각하니 참을수 없이 괴로웠다. 풀숲에 내린 새벽이슬에서 싸늘한 랭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바로 그 순간 장군님께서 그를 돌아보시였다.

《아, 남일동무!》

새벽이슬에 젖은듯 한 음성이였다. 그러고도 한동안 깊은 상념의 세계에서 돌아오시지 못하는듯 했다. 손에 든 나무줄기에서 이파리 하나를 꼭 잡고 남일의 어깨너머 어덴가를 보고계시였다. 어깨에 걸치신 옷깃에 뽀야니 덮여있는 이슬이 눈에 띄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손에 들고계시던 나무줄기를 떨구었다. 이슬젖은 잎사귀 하나가 소리없이 떨어져 그이의 장화앞코숭이에 내려앉았다. 여전히 그이의 상념세계는 멀리 아득한 공간 저끝에 가계신듯 했다. 무엇인가 한없는 괴로움이 그이의 몸과 마음을 진감시키고있었다. 이슬에 젖은 그이의 눈섭이 가끔 푸들푸들 떨리군 했다.

남일은 걷잡을길 없는 자책감을 느끼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최고사령관동지!…》

그이께서 펀뜻 머리를 드시였다. 그 순간 남일은 그이의 두눈에서 부글부글 끓어번지고있는 쇠물을 보았다.

《저 미국야만들이 무슨짓을 하고있는지 보오!… 우리의 평화적주민지대에 무차별폭격을 들이대던 나머지 이제는… 강점지역에서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고있소!》

그이의 음성은 격렬한 증오와 비분에 떨리고있었다. 그 한없는 분노의 절규가 파도처럼 남일의 가슴에도 밀려들었다. 남일은 부지불식간에 입술을 괴롭게 비틀었다.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인천에서만도 단 며칠동안에 수천명을 학살하였소. 놈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치떨리는 살륙이 벌어지고있단말이요. 벌써 서울에서도… 인민군대를 조금이라도 도와준 사람이라면 늙은이건 어린이건 가림없이 수십수백명씩 한꺼번에 쏘아죽인다고 하오. 지어 집단적으로 생매장을 하고 땅크로 깔아죽이는 등 귀축같은 만행을 다한다는것이요. 〈자유의 녀신〉을 거만하게 내세우던 〈월가의 신사〉들이 지금 처녀들을 라체로 자동차와 땅크에 싣고다니는가 하면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있소. 그렇게 함으로써 비렬하고 추악한 저 살인귀들은 우리 인민의 신념과 의지를 꺾으려 하고있소. 가장 흉악한 살인만행으로써 우리 인민을 공포에 떨게 하려는것이요!…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놈들은 이미 군사적으로뿐만아니라 정치도덕적으로도 심대한 패배를 당하고있소. 이제 놈들은 그 어떤 기만으로써도 자기들의 흉악한 살인만행을 가리우지 못할것이며 정당화할수 없을것이요. 우리는 놈들의 죄행을 결코 용서치 않을것이며 반드시 천백배로 복수하고야말것이요!》

새벽안개가 걷히고있었다. 그이께서 바라보시는 저쪽, 나무우듬지들너머에 넓고 푸른 하늘이 점차 넓어져갔다. 풀이슬 듣는 소리가 들렸다. 허나 그이께서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을 때 누기찬 땅을 밟는 발자국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괴로운 발걸음, 무수한 발자국들우에 다시 덧찍히우는 무거운 발자국… 부지런한 청서 한마리가 벌써 솔씨를 까려고 뽀르르 가지를 타고 가는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아무런 감촉도 느끼시지 못했다. 물속같은 정적…

슬픔과 아픔은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에 따라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기도 하고 오래동안 마음속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것을 가셔주는것은 오직 시간의 흐름뿐이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모진 아픔도 산중의 메아리처럼 멀리 사라져간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도 가시여내지 못하는 아픔이 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가슴에 깃들어있는 아픔이 바로 그러하다. 그 아픔은 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한오리 두오리 희여가는 머리칼과 날을 따라 깊어가는 눈가의 주름살로 새겨진다. 시간도 세월도 그 아픔만은 덜지 못한다.…

갑자기 그이께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남일동무.》

아주 낮은 음성이였다. 하나 속삭이시는듯 한 그 부름의 류달리 침통한 어조가 남일의 가슴을 쿡 찔렀다.

《우린 비록 후퇴를 하지만… 놈들이 우리 인민들을 마음대로 모욕하고 학살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소. 어느때든 우리 인민이 좌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며 그들이 원쑤격멸의 성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게 해야 하오. 전인민적전쟁이요!… 전인민적전쟁으로 침략자들을 타승할것이요!》

남일은 그이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가슴이 풀떡풀떡 뛰고 힘이 솟구쳤다. 강부관장과 오영혜가 하던 말들이 이제와서는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그 도도한 기상, 쇠소리가 섞인 굳센 음성, 불이 이는 안광… 방금전까지 그이께서 그리도 괴로운 상념속에 계셨다는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그이께서 어깨우에 걸친 상의를 바로잡으시였다.

《무슨 일로 이 새벽에 나왔소?》

《장군님!》

남일은 또한번 뜨거운 물이라도 들쓴것 같았다. 이마전에서 들뛰는 세찬 맥박을 느끼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락동강계선에서 군집단의 전선리탈을 보장하여 마지막까지 방어계선에 남아있던 두개의 련합부대가 각기 적들에게 포위되였습니다.》

《…》

《최현동무와 박정덕동무의 사단들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이께서 조용히 물으시였다.

《확인된 자료요?》

《예. 정찰국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럼 그 동무들과는?… 무선련계를 취해봤소?》

《무선련계가 끊어졌습니다. 장군님! 고성능출력을 가진 최사통신결속소의 무선차까지 주야로 만가동했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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