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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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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305회 작성일 23-10-1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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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4

(1)


《나으리! 나으리!…》

미닫이밖에서 하녀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다급히 찾는 소리에 일본외무대신 무쯔 무네미쯔가 대답이라도 하듯 별안간 요란스럽게 기침을 깇었다. 페결핵환자인 그는 요즘 신열이 나서 며칠째 집에서 앓고있었다.

그의 안해 기노가 밖에 대고 소리쳤다.

《좀 기다려라.》

기노는 기침을 깇는 남편의 잔등을 쓸어주었다.

무쯔가 타구에 가래를 뱉았다.

그것을 들여다본 기노가 락심하여 중얼거렸다.

《또 피가 나오는군요.》

무쯔는 안해의 말에는 대꾸없이 밖에 대고 무슨 일인가고 물었다.

《나리님, 외무성에서 관리가 오셨습니다. 급한 일이라기에…》

밖에서 송구스럽게 아뢰는 하녀의 말에 기노가 신경질적으로 종알거렸다.

못살게 구는군. 가뜩이나 편치 않은이를……》

무쯔는 벌거벗은 웃몸을 일으켜 앉으며 유까다를 달라고 안해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노는 제가 나갔다오겠다고 했으나 무쯔는 언성을 높였다.

《어서!》

창백한 낯색, 우묵한 눈확에서 번뜩이는 눈빛, 일본인치고는 특유한 고수머리… 이럴 때의 무쯔는 남편이라기보다 랭정한 정치가였다.

여북했으면 정계에서나 항간에서 그를 두고 《면도칼 무쯔》, 《면도칼대신》이라고 하겠는가.

기노는 낯을 찌프리며 유까다를 집어 남편의 벌거벗은 여윈 몸에 입혀주었다.

유까다의 허리끈을 매며 응접실로 들어서는 무쯔를 보고 늙수그레한 외무성관리가 급히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각하,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요?》

《저 조선에서 급한 전보가 왔기에…》

무쯔는 말없이 희고 여윈 손을 내밀었다.

전보문을 받아든 그는 무표정한 기색으로 그것을 읽었다.

《지급, 일본 도꾜 내각 외무대신 무쯔 무네미쯔각하 앞. 오까모도 류노스께의 정보에 의하면 조선 전라도 고부에서 농민폭동이 일어남. 조선에서 내란이 일어난 이 기회를 잘 리용해주기 바람. 차후 행동지시를 요함.

조선주재 일본림시대리공사 서기관 스기무라 후까시.》

이 순간 무쯔의 우묵한 눈확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뜩이는것을 보고 늙은 관리는 긴장한 자세를 취했다.

잠시 응접실을 거닐던 무쯔가 관리쪽으로 돌아섰다.

조선내란의 정황에 대해 제때에 통보하라고 우리 공사관에 지시하시오. 그리구… 중요하게는 명성황후의 동태와 함께 조선에 있는 청국관리 원세개의 움직임에 대해 철저히 감시하라고 답전을 치시오》

《하.》

허리굽혀 인사하고 뒤로 돌아서는 관리를 무쯔가 멈춰세웠다.

《조선에 있는 오까모도 류노스께더러 급히 귀국하라고 하시오. 나도 곧 내각으로 나가겠소.》

이렇게 말한 무쯔외상은 전화기가 있는 탁자로 다가가 송수화기를 집어들고 총리와 내무상을 찾았다.

아직 겨울이 한창인 2월이라고 하지만 도꾜의 날씨는 봄날처럼 훈훈하였다.

총리의 응접실에 외투며 모자를 벗어놓은 무쯔는 총리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집무실에는 내무대신 이노우에 가오루가 안락의자에 앉아있었고 방주인인 총리대신 이또 히로부미는 주단우를 거닐며 열변을 토하고있었다.

방에 들어선 무쯔가 두 선배에게 목례를 표시하자 이노우에는 저빠듬히 앉은 자세로 머리를 끄덕였으나 이또총리는 두팔을 벌리며 반색했다.

《오, 외상 어서 오시오. 당신의 전화를 받고 지금 조선문제를 의논하던중이요.》

무쯔는 이노우에의 곁에 자리를 잡으며 고수머리를 비다듬었다.

머리가 일찍 벗어진 이또총리는 53살이였고 페결핵환자특유의 창백한 낯색과 우묵한 눈확에 눈빛이 날카로운 무쯔는 갓 쉰살이였다. 그리고 얼굴의 칼자리로 하여 험상궂어보이는 내무대신 이노우에는 그중 년장자로서 59살이였다.

하지만 이또와 이노우에는 같은 쵸수출신으로 일찍부터 《존왕양이》파(천황제를 지향한 반막부파)로서 막부타도를 위해 싸웠고 또 밀선을 타고 영국류학도 함께 떠난것으로 하여 상당히 막역한 사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나이를 초월하여 언제나 너나들이로 말하군 하였다.

그리고 이또와 이노우에의 후원으로 외무대신의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 무쯔는 그들을 선배로서 존경하고 섬기였다.

아무튼 정치가로서 가장 로회하고 정력적인 시기라고 할수 있는 50대의 사나이들인 이 세사람은 일본정계의 거물이자 조선침략의 원흉들이였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심군들인데 구태여 개성을 찾는다면 총리 이또 히로부미는 보다 음흉하였고 내무상 이노우에 가오루는 파렴치하였으며 외상 무쯔 무네미쯔는 교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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