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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조선의 힘》 제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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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815회 작성일 23-09-0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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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0 회

마 감

2


김책이 탄 승용차는 삼석쪽으로 난 큰길을 따라 최고사령부 야전지휘소를 향해 달리고있었다. 시내를 벗어나면서부터 승용차는 속도를 높였다. 파괴된 거리를 복구하는 사람들과 오고가는 차들이 거의 없어진것이였다.

저녁무렵이였다. 눈을 들쓰고있는 가로수들이 휙휙 뒤로 지나가군 했다. 맵짠 겨울의 대기는 유리같이 투명했다. 서켠하늘가에서는 어느덧 하늘의 한 귀퉁이가 노을에 불타고있었다. 짧은 겨울해는 서둘러 자취를 감추려는듯 했다.

김책은 차창을 스쳐가는 례사로운 겨울풍경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모든것이 새롭고 정답고 한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눈이 녹지 않은 농가의 지붕들, 굴뚝이 미여지게 쓸어나오는 연기, 양지마다 거뭇거뭇 드러나있는 밭두렁들, 마을쪽으로 뻗어간 오솔길에서는 소잔등우에 올라앉은 한 소년이 뒤따르는 아이들을 향해 손나발로 웨쳐대고있었다. 그켠을 바라보고있던 김책이 운전사에게 피끗 시선을 던졌다.

《천천히, 좀더 천천히 모오!》

《?!…》

전사는 자기가 잘못들었나 해서 몇번이고 흘끔흘끔 곁눈질했다. 차가 전속으로 달리는 때에조차 속도가 느리다고 불같이 다궂던 김책이였다.

여전히 김책은 소를 타고가는 소년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소년은 또 무어라고 뒤쪽에 대고 웨쳤다. 한무리의 애들이 그쪽으로 와- 밀려가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뭐라고 했길래 저럴가… 저애들은 지금 무슨 일로 저리도 기뻐하고있는것일가?…)

이런 하찮은 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보기는 처음이였다. 하지만 이게 왜 하찮은 일이랴, 그는 이것이 커다란 희생의 대가로 전취된 생활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저 천진한 어린이들의 웨침소리, 웃음과 환성, 책가방, 학교에로 오가는 이 길을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바쳤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그는 지금 그 어린이들과 어울려 막 뛰놀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맵짠 바람을 페부에 가득 들여마시며 손이 빨갛게 익도록 눈싸움이라도 벌렸으면 하는 기이한 심정이였다. 하여 그는 저도모르게 미소를 그린다… 천천히 의자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인다. 고르로운 발동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으려니 부지중 자기의 어린시절의 발자국이 찍히던 함경북도-성진에서 수십리 떨어진 두메산골 옥천땅, 돌서덕아래로 뻗어간 한줄기 오솔길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짚세기를 끌며 그 오솔길에서 떠난 발걸음이 오늘은 얼마나 멀리 왔는가!…

승용차의 진동에 온몸이 들썽거렸다. 그는 말라드는 입술을 감빨며 계속 생각을 이어갔다. 흘러간 싸움의 나날들, 그가운데서도 1941년의 일들이 가슴벅차게 상기되였다. 그때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처음 만나뵙게 된 김책은 최용건과 더불어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이께 한평생 장군님을 모시고 싸우겠다고 절절하게 부르짖었었다.

고난도 많았고 눈물과 아픔도 헤아릴수 없이 많았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을 혁명의 진두에 모셨기에 그 모든 시련의 고비를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일시적후퇴의 엄혹한 시련도 끝내 이겨내고 오늘은 저 아이들의 웨침소리에, 미래가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는것이다!…

승용차는 애들이 간곳을 쫓아 작은 다리를 건너 마을앞으로 돌고있었다. 희끗희끗한 눈더미우에서 설핀 락조가 스러져갔다. 운전사가 경적을 울렸다. 앞쪽에서 소잔등에 타고가던 소년이 놀라서 돌아보았다. 그를 뒤따르던 애들은 길 량쪽으로 쭉 갈라졌다. 그중에서 어깨에 책보를 동여맨 한 소년이 모자를 훌 벗어들고 경례를 했다. 소를 타고가던 소년은 황급히 뛰여내렸다. 어느새 귀덮개 달린 병사용 솜모자를 벗어들고 허리를 굽석했다. 그러자 구령이라도 있은것처럼 길 좌우로 비켜섰던 애들이 일시에 경례를 했다.

승용차는 소년들의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김책은 손을 들어 차창밖의 소년, 소녀들에게 일일이 답례를 했다. 피어린 전쟁을 겪고있는 새 세대에, 희망찬 래일을 향해 걸어가는 새 세대에 보내는 다정한 인사였다.

어느새 소년들은 멀리 뒤에 떨어졌다. 승용차는 어둠에 싸인 험한 길을 굴러갔다. 전조등을 켰다. 희미한 불빛이 눈더미들과 빛을 다투며 길섶의 잡관목들과 울퉁불퉁한 길바닥을 향방없이 휘저어갔다.

얼마후 김책은 최고사령부야전지휘소에 이르렀다. 방금 일시적후퇴를 끝내고 나온 최고사령부는 여기서도 눈에 띄게 긴장하고 분주했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실에서 매일 바쁜 시간을 보내신다고 하였다.

김책은 부관장과 마주서있었다. 부관장이 곧 보고드리겠다고 하는것을 막고 조용히 물었다.

《장군님께선 혼자 계시오?》

《예.》 부관장은 례사롭게 대답했다.

《방금전에 전선지휘관들이 작전협의를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김책은 부관장을 따라 장군님 계신 방앞에까지 갔으나 또 망설이였다. 부관장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장군님께선 몹시… 바쁘시겠지?》하고 물었다. 부관장은 머밋거렸다. 그것을 보자 김책은 한팔을 내저었다. 말 안해도 알만하다는 의미였다. 그는 토방아래에서 돌담까지의 사이를 말없이 거닐었다. 밝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문가를 이윽토록 바라보기도 했다. 그 창문에 장군님의 모습이 비쳐져있었다. 허리를 굽히시고 무엇을 적기도 하고 한동안 전혀 움직이지 않고 서계시기도 하였다. 커졌다작아졌다 하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김책은 생각하였다.

(내 오늘 무슨 일로 장군님께 급히 달려왔던가?… 여느때와 달리 왜 오늘은 아무런 사전련락도 없이 무작정 달려왔던가?…)

이밤을 넘기고싶지 않은 그런 절박한 마음속 충동이 있었다. 꼭 장군님을 뵙고싶었고 장군님과 무릎을 마주하고 가슴속에 가득찬 심중의 사연을 말씀드리고싶었었다.…

김책은 그린듯이 서있는 부관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장군님께 보고드리오!》

관장은 곧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였다. 엷은 문창호지를 바른 세살문이 활짝 열리며 밝은 불빛이 쏟아져나왔다.

《김책동무!》

장군님께서 나오시였다. 김책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자 장군님께서는 그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김책동무, 이밤중에 련락도 없이 험한 길을 오다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장군님!》 김책은 전혀 그답지 않게 우정 우스개소리처럼 말씀드리려고 애썼다.

《오늘따라 꼭 장군님을 만나뵙고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언제 어디서 그 무엇을 하든간에 치밀하고 정확하고 단호한 김책이였다. 규칙적인 생활을 즐기고 그에 습관되여있는 그는 휴식을 하는 때에조차 한담으로 시간을 보내는것을 질색했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달라졌다. 이밤만은 그도 달라지고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또 스스럼없이 장군님과 함께 좀 거닐고싶다고 말씀드렸다.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장군님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찬바람에 얼고 굳어진 눈무데기우에 새의 발자국들이 나있었다. 그러나 차츰 창가의 불빛이 멀어지자 희끗희끗한 눈더미들과 신비로운 숲의 정적만이 남았다. 키높이 자란 소나무들이 굵다란 가지를 쫙 펴들고 비좁은 골안상공을 덮고있었다. 어데선가 페부를 쿡쿡 찌르는 차고도 싱그러운 숲의 미묘한 냄새가 풍겨왔다. 밤하늘에 널린 별들이 차디찬 빛을 뿌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는 빠그극빠그극 눈밟히는 소리가 났다.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어둠에 잠긴 골안을 둘러보시였다.

《얼마나 좋은 경치입니까. 이제 전쟁이 끝나면 도처에 인민들을 위한 휴양소, 료양소를 많이 지어야겠습니다.》

그이께서는 김책을 돌아보시였다.

《전쟁이 끝나면!…》하고 김책이 속삭이듯 했다. 《그때엔 더 많은 일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옳습니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놈들을 타승한 우리 인민에게 어떻게 하면 더 유족하고 더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줄수 있을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느덧 그이께서는 흥분어린 음성으로 말씀을 이어가시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존엄있고 제일 잘사는 인민으로 만들고싶습니다. 위대한 인민이고 이 세상 제일 좋은 인민인데 복된 삶을 누려야 할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장군님!》 김책이 부르짖었다.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저도 한평생 인민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눈더미우에 찍히는 발자국들은 키높이 자란 로송들주위를 돌아 가지런히 찍혀갔다. 장군님께서는 손에 잡히는대로 솔잎을 뜯어 잘근잘근 씹어보시였다. 떫은, 그리고 아릿하면서도 상긋한 맛이 느껴지시였다. 그렇게 걸으면서도 그이께서는 김책이 무슨 일로 이밤중에 달려왔을가 하는 생각을 하시군 했다. 그저 소풍이나 하고싶어 찾아오기엔 너무도 많은 일감을 안고있는 그였다.

그렇게 얼마간 또 시간이 흘렀다. 발자국들은 다시 처음 떠나던 곳까지 되돌아왔다. 밤은 깊어가고있었다. 밤하늘에는 더 많은 별들이 눈을 뜨고 이따금 파란 꼬리를 끌며 류성이 떨어져내렸다.

문득 장군님께서는 김책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는것을 느끼시였다. 천천히 머리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시였다.

《장군님!》

김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바람 한점 없이 추위에 얼어붙은 대기가 금선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장군님, 지난달… 김정숙동무의 생일날에 못왔댔는데 이달도 다 가니 암만해도 그냥 있을수가 없어… 때늦게나마 찾아왔습니다.》

《?!…》

장군님께서는 가만히 서계시였다. 숨소리도 없이 그린듯 움직이지 않으시였다.

머리우에서 바늘잎사귀들이 푸시시 떨어져내렸다. 골어귀 부락 한끝에 있는 농가에서는 등디불이 하나 가물거렸다. 호흡하듯이 커졌다작아졌다 하는 그 불빛을 이윽토록 바라보고있던 그이께서 마침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어려운 전쟁을 겪고있는데 떠나간 사람의 생일까지 차리겠습니까. 설사 생일을 차린다 한들… 그가 알기나 하겠습니까…》

그이의 음성은 젖어있었다. 어느새 김책은 슬그머니 손등을 눈언저리에 가져가고있었다. 그는 지근거리는 모진 아픔이 심장을 그러죄는것을 느꼈다. 백두밀림의 눈보라속에서 녀성의 몸으로 헐벗고 굶주리며 사선을 넘어 조국의 광복을 안아온 혁명전우, 그 잊을수 없는 동지를 잃은지도 어느덧 두해가 되여온다. 김책은 가슴 한복판을 주먹으로 세게 얻어맞은것처럼 입으로 새여나오는 신음소리를 삼켰다. 눈시울이 사뭇 세차게 떨려났다. 그는 두주먹을 꽉 부르쥐고 저도모르게 온몸을 떨고있었다.

장군님께서 역시 아무 말씀도 없이 흘러간 지난날들과 이 세상 가장 귀중한 혁명전우였던 김정숙동지를 회고하시는듯 했다.

숲속에서 무엇인가 흐느끼듯 했다. 차츰 나무가지들이 설레였다. 바람이 불고 밤하늘엔 구름이 끼였다. 창공의 별빛들이 소리없이 꺼져갔다.

어느덧 장군님의 집무실 탁상시계는 밤 12시를 가리켰다. 김책은 그만 돌아가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밤이 깊었으니 자고 가라고 몇번이고 권하시였다. 하지만 김책은 내각에서 아침에 조직한 사업이 있어 가야 한다면서 종시 일어나 문밖으로 나서려 하였다.

그때 장군님께서 김책의 양말 한쪽이 꿰여진것을 보시였다. 그이의 얼굴에 일순 어두운 그림자가 비껴갔다. 김책은 너무나 당황하여 꿰여진 양말을 감추려 했다. 발끝을 꼬부리고 다른 한발로 그것을 가리웠다. 그때 장군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너무 일만 일이라 하지 말고 빨리 집을 잡아놓고 소개지에 가있는 부인도 데려오도록 해야겠습니다. 오죽 바쁘면 양말도 미처…》

김책은 금시 눈이 멀고 입술이 다 타버리는듯 했다. 장군님께 하찮은 일로 걱정을 끼쳐드린것이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허둥지둥하며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이건 그저…》

그이께서는 어느새 자신께서 신으실 양말을 꺼내시였다. 김책은 그이께서 주시는 양말을 받아쥐고는 인사의 말씀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고 어둠속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장군님께서 손수 전지를 켜들고 그에게 길을 밝혀주시였다. 밝고 동그란 전지불이 김책의 걸음을 앞질러 더듬어갔다. 벌써 자동차는 발동이 걸려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김책이 차에 이를 때까지 전지불을 밝혀주시였다. 하지만 이것이 그와의 마지막 리별로 될줄이야 어찌 아셨으랴…

그날… 1월의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겨울치고는 드물게 보는 투명한 안개가 골안 가득히 서려있었다. 아침해는 빛을 잃고 불그레해졌다. 골어귀의 농가들에서 솟아오른 재빛연기도 얼어붙은 땅바닥을 굼니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문을 펴들고계시였다. 그때 소리없이 문이 열리더니 부관장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컴컴하게 질려있었고 눈길은 허둥거렸다. 그이께서는 순간 그 어떤 불길한 예감으로 하여 가슴이 서늘해지는것을 느끼시였다.

《왜 그러오?》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러나 부관장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같이 해쓱하였고 두눈은 공허하게 움직이고있었다.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하오!》

《장군님!》 부관장은 드디여 입을 열었다. 《방금 내각에서 전화가 왔는데… 김책동지가 심장마비로 그만… 서거하였답니다.》

《?!…》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슴푸레한 그림자들이 얽힌 그의 두눈을 놀라서 바라보시였다. 무슨 소리를? 무슨 거짓말을?! …그이께서는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묻고싶으셨지만 말이 나가지 않았다.

한순간 놀란 심장이 뜨끔하니 아프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전화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이께서 급히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내각사무국 부국장입니다. 장군님! 급히 알려드릴 말씀이…》

《말하시오, 어서!…》

《장군님! 지난밤 김책동지가…》

역시 김책의 서거를 알리는 비보였다.

그이께서는 손끝이 막 저려나는듯 하여 송수화기를 급히 바꿔드시였다.

《동무, 무슨 말을 하는거요?》하고 그이께서는 다우쳐 물으시였다. 《김책동무는 방금 여기에 왔다갔는데… 똑똑히 알아봤소?… 뭐라구? 누가 확인했소, 누가?!…》

차츰 그이의 입술은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보고를 끝낸지 오랬건만 송수화기를 꽉 틀어잡고 혼자말처럼 줄곧 뇌이시였다. 《이게 무슨 일이요. 그래 김책동무가 정말 갔단말이요?!…》

그이께서는 목에 경련이 이는것을 느끼시였다. 형언할길 없는 아픔에 가슴이 굳어지고 목을 움직이실수 없었다. 송수화기를 틀어쥐신 손도 과다든듯 했다. 그러다가 여전히 굳어진채로 서있는 부관장을 보시였다. 그의 얼굴이 즐펀하게 젖어있는것을 보시고는 그만 송수화기를 틀어쥔 손을 맥없이 놓으시였다. 손끝에서부터 가슴속 깊은곳까지 쩌릿쩌릿한 아픔이 파문지어갔다. 어느덧 그이의 눈가에서도 피빛의 이슬이 떨리고있었다.…

이날 그이께서는 아침식사도 점심식사도 다 건느시였다. 오후부터는 건강이 몹시 좋지 못하시였다. 열이 오르고 자주 기침을 하시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예정된 작전협의까지 끝내고나자 부관장을 부르시였다.

《차를 준비하오.》

적기들이 상공을 배회하고있었다. 도로상에 승용차가 나타나자 기수를 숙이고 급강하했다. 차가 지나친 뒤쪽에서 폭탄이 터지고 기총탄이 마구 쏟아졌지만 그이께서는 줄곧 시창밖에만 시선을 주고계시였다.

내각사무국 1층홀에 김책의 령구가 놓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문앞에 이르시자 가슴을 허비는듯 한 추도가의 선률이 물결쳐왔다. 그이께서는 흐느끼듯 숨을 들이그으시였다. 그러자 걸음마다 호흡이 절박해지는것을 느끼시였다.

천천히, 그러다가 급히 령구앞으로 다가가시였다. 부지불식간에 한손으로 가슴 한쪽을 꽉 눌러잡으시였다.

《김책동무!...

숨을 들이그으실 때마다 뜨금뜨금 깨무는듯 한 모진 아픔이 마쳐왔다. 어느덧 눈앞이 흐릿해지시였다.

김책의 모습은 생시나 다름없었다. 눈을 감고 고요히 평온히 누워있었다. 근엄한 표정, 바투 쓸어넘기던 머리카락이 이마우로 흩어져내렸을뿐... 자고있는듯 했다. 지나친 과로에 못이겨 잠간 눈을 붙이고있는듯...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이마우에 흩어져내린 머리카락을 한오리 두오리 쓸어넘겨주시였다. 그래도 잠들어있다. 고요히, 숨결도 없이, 그이께서 오신것도 알지 못하고, 그이께서 아직도 이 사실을 믿지 못하시여 가슴조이며 기다리시는줄도 알지 못하고... 고요히 누워있다... 순간 그이께서는 그만 북받쳐오르는 설음을 참기 어려워 《김책동무!-》하고 목메여 부르시였다....

드디여 령구를 발인할 시각이 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수 부으신 커다란 술잔을 령구앞에 놓으시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꽉 잡으시였다.

《김책동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살아도 같이 살고 싸워도 같이 싸우자던 동무가 벌써 간단말인가. 한평생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던 동무가... 그것이 바로 몇시간전의 일인데... 수많은 일을 남겨놓고 벌써 간단말인가!...

비분의 눈물에 그이의 음성은 갈리시였다. 지난밤의 일들이 떠올라, 우리 인민에게 더 좋은것을 더 많이 주지 못해하면서도 그자신은 꿰여진 양말을 신고있던것이 떠올라 더더욱 눈물을 참기 어려우시였다.

《김책동무, 이렇게 뜻밖에 숨지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요, 조국의 광복을 위해 그렇게 험한 싸움길을 다 헤쳐온 동무가, 전선천리길에서도 끄떡없던 동무가 그렇게 간단말인가!?... 승리의 날도 눈앞에 다가오는데... 그렇게 바라던 그 승리를 보지 못하고 어쩌면 그렇게 간단말인가, 김책동무! 어찌하여 내게 제일 가깝고 귀중한 동무들만 이렇게 먼저 간단말인가!...

그이께서는 령구를 붙안고 흐느끼시였다. 어둠속에서 몸부림치듯 타오르던 수십대의 초불이 가물거렸다. 추도가의 주악도 떨리듯 흐느끼고 둘러선 모든 사람들이 그만 참지 못하고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이께서 먼저 일어서시여 몸소 령구를 메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찬바람이 불어쳤다. 밖에서는 솜털같은 눈송이들이 하나 둘 바람에 흩날리고있었다. 밤은 깊어갔다. 주위의 모든것이 무거운 적막에 잠겨들었다. 흩날리는 눈송이들만이 사람들의 눈물에 젖은 얼굴에 사정없이 휘뿌려졌다.

령구는 대성산에 운반되였다. 어느새 눈송이들은 하늘을 가득 메우며 퍼부어지고있었다. 눈우에 파헤쳐진 언 흙덩이들과 묘자리 밑바닥에도 눈이 한벌 덮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관우에 내려쌓이는 녹지 않은 눈송이들을 손바닥으로 쓸어내고계시였다. 내리면 쓸고 또 쓸며 무엇인가 혼자말씀을 하시군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불들이 비통한 슬픔에 잠기신 그이의 눈가에 얼어붙은 이슬을 쇠물빛으로 물들이고있었다.

이윽고 눈내리는 밤하늘로 조총의 긴 메아리가 얼어든 대기를 찢으며 오래도록 울려갔다....


길은 얼마나 멀고 아득했던가. 미국무력침범자들이 전쟁을 도발한 지난해의 그 6월 25일 새벽부터 김일성동지께서 열어오신 승리에로의 길은 얼마나 멀고 험난했던가!... 불볕에 달아오른 수도의 포장도로, 구름처럼 먼지를 말아올리던 전선길, 비탈진 외통길과 수안보에로 이어지던 철길, 억수로 퍼붓는 소낙비속을 뚫고가던 진창길과 적기들이 날치던 준엄한 밤길은 또 얼마였던가.

...가을락엽이 차창가에 흩날리더니 어느덧 설한풍이 휩쓸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수도의 거리에 들어서고있었다. 눈은 더욱더 기승스레 퍼부어지고있었다. 시창에 가득 달라붙는 눈송이들로 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오직 한가지 생각에만 집념하고계시였다.

《놈들의 폭격에 상할수도 있지...

그이의 말씀에 부관장이 《예?!...》하며 머리를 돌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하고 그이께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김책동무의 시신을 옮겨야겠어. 덕천군에 있는 굴속에 잘 안치했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도로 내가 묘를 쓰게 하자. 나쁜놈들이 장난질을 할수 있으니... 누구도 모르게... 래일 당장!...

차가 멎었다. 비로소 김일성동지께서는 흐릿한 시창유리로 밖을 내다보시였다. 갈림길어구였다. 전선으로 나가는 땅크와 포차들때문에 길이 막혀 차가 멎어선것이였다. 눈을 한벌 들쓴 땅크들이 우릉부릉 배기가스를 힘껏 내뿜으며 나가고있다. 포차들우에는 포병들이 굳어져있었다. 열병대오에 나선 전사들처럼 꼿꼿이 눈을 들쓰고있다.

관장이 차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왜?》하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저... 제가 나가서...

길을 열겠다는 소리이다. 그이께서 그를 앉도록 손짓하시였다.

《놔두오. 얼마나 장쾌한 모습이요!》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아츠러운 무한궤도소리, 야밤의 얼어붙은 대기를 흔드는 발동기소리, 눈송이들사이로 퍼져가는 배기가스, 벌거우리한 전조등...포신을 거연히 추켜든 저 땅크포탑안에서는 원쑤격멸에로 나가는 전사들의 불타는 눈빛들이 빛나고있을것이다.

땅크와 포차들의 대렬은 오래도록 끝없이 잇대여졌다. 다시 승용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엔 희붐하게 날이 밝고있었다.

별안간 김일성동지께서 또 차를 세우도록 하시였다. 방금 지나친 콩크리트다리밑의 화토불이 마음에 걸리신때문이였다. 란간들이 떨어져나가고 교각마다 흠집투성이인 그 다리밑에서 처참할 지경으로 람루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불을 피우고있었다. 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부관장에게 아이들을 데려오라고 하시였다. 그러나 다리목에서 승용차들이 멎고 웬 군관이 다가오는것을 본 애들은 급기야 뿔뿔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얘들아, 게 섰거라!》 부관장이 달려가며 소리쳤다. 《거기 서라는데!...

그러나 어느새 다리밑은 텅 비고 임자없는 화토불만 탁탁 소리내며 기세를 돋구고있었다.

강부관장은 잠시 어쩔바를 몰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별안간 눈덮인 페허쪽을 향해 소리쳤다.

《얘들아, 장군님께서 너희들을 찾으신다. 어서 나오너라!-》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눈송이들만 하염없이 내리고있었다. 강부관장은 어쩌는수가 없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맥빠진 걸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허척지척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별안간 멎어섰다. 고개를 홱 돌렸다.

눈덮인 페허쪽에 람루를 걸친 아이들이 주런이 나와있었다. 모두 하나같이 파리하고 우엉한 두눈이 쑥 우묵져보이는 애들이였다. 부관장은 너무 반가와 《얘들-》하고 소리치려 했으나 그만 또 입을 다물고말았다. 비로소 그는 그애들이 장군님 계신곳을 바라보며 한걸음, 두걸음 추위에 와들와들 떨며 가고있는것을 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애들을 향해 마주가시였다. 제일 앞서오던 나어린 한 소녀가 걸음을 멈추고 그이를 찬찬히 보고있었다. 소녀의 어지러운 손에는 반나마 불에 끄슨 강냉이가 쥐여져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류처럼 가슴을 지르는 충격에 못이겨 《얘!》하고 목메여 부르시였다. 그러자 새까만 강냉이를 쥔 소녀가 바들바들 떨며 가늘게 부르짖었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어린 소녀를 덥석 안으시였다. 추위에 파랗게 얼어든 두손을 꼭 잡으시려니 별안간 그애는 왕 왕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말아. 얘, 울지 마!》

그이의 목소리는 떨리시였다.

그때였다. 페허쪽에 늘어서있던 애들이 일시에 와- 달려왔다. 그러나 장군님앞에 이르자 모두 멎어섰다. 숨을 할딱거리며 이상한 목소리로 저마끔 부르짖었다.

《장군님!-》

눈송이들이 파들거리며 흩어졌다. 그이께서 한팔을 벌리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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