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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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5
(2)
얼마뒤 마상재를 논 태봉이가 패랭이를 들고 사람들앞을 지나갔다.
모두 칭찬과 함께 아낌없이 돈을 던져주었다.
태봉이가 병무와 아정의 앞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병무도 아정이도 주머니에 엽전 한푼 없었던것이다.
태봉이가 조소와 랭소를 띠우며 그들의 앞을 지나치려는 순간 아정이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이보세요, 잠간만!》
아정은 손가락에서 옥지환을 뽑아내더니 태봉이의 패랭이속에 떨구어넣었다.
《아가씨, 고맙소이다. 길이 복락하십시오.》
태봉은 아정이에게 머리숙여 인사하더니 병무한테는 비양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거지량반두 잘 가시우.》
《뭐야?!》 병무가 대뜸 욱해서 태봉이에게 접어들었다. 《임마, 이자 그 소리 다시 해봐! 뭐, 거지량반?!》
《내 말이 잘못되였소? 실컷 구경하고도 돈 한푼 안 내면야 거지량반이지 별게요?》
태봉은 씨물씨물 웃으며 빈정거렸다.
《이짜식!》
병무는 주먹을 부르쥐였다.
그러자 울상이 된 아정이가 병무를 만류했다.
《도련님, 제발 그만두세요.》
병무는 단숨을 훅 내뿜었다.
《야 이 광대자식아, 이 아가씨가 아니면 너 오늘 내 주먹에 골통이 박살났을줄 알아라.》
이 순간 태봉이의 눈에서 불이 펄 일었다.
《내 골통이 박살나기 전에 내 칼이 먼저 네 염통을 맞구멍냈을게다. 야! 이 고라리생원자식아!》
마주 노려보는 병무도 태봉이도 숨소리들이 몹시 거칠었다. 당장 무슨 일이 부르터질것 같은 일촉즉발의 순간앞에서 두 처녀, 아정이와 옥절이는 어쩔줄 몰라 그저 울상이 되였다.
마주선 병무와 태봉은 나이며 키가 둘 다 엇비슷한데 병무가 어깨가 넓고 체구도 다부지다면 태봉은 걀람한 몸이 날파람스러워보였다.
그래도 랭정한것은 병무였다.
《우리 저쪽으로 좀 가자.》
병무는 울뚝거리는 태봉이를 끌고 공지의 변두리 으슥한 곳으로 걸어갔다.
아정이는 어쩔줄 몰라 그대로 서있었으나 옥절이는 발볌발볌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얼마뒤 병무가 범상한 기색으로 걸어오더니 아정의 앞에 멈춰섰다.
《집으로 갑시다.》
너무도 태연자약한 병무의 태도와 말투에 아정은 어느 정도 속이 풀렸으나 그래도 걱정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 없었나요?》
《일은 무슨 일…》
그들은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큰길과 여러개의 골목을 지나 자기 집 대문앞에서 발길을 멈춘 아정이가 미안스러운 어조로 다 왔다고 말했다.
병무는 아정이네 집오래를 둘러보았다. 아정이가 차린 명절비음에 비해서는 대문도 크지 않은 보통기와집이였다. 명절인데도 집안으로 초대하지 못해 송구스러워하는 아정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명절을 잘 쇠십시오.》
이렇게 인사말을 건넨 병무는 오늘 명절이 자기에게도 그리고 아정이에게도 별로 즐겁지 못하리라는것을 느꼈다.
그들은 둘이 다 어쩐지 헤여지기가 서운했다. 그러나 먼저 몸을 돌린 병무가 골목길로 씨엉씨엉 걸어갔다. 대문앞에 오도카니 선 아정은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래웠다.
이윽하여 그가 대문을 열려는 순간이였다.
문득 《아씨.》하고 찾는 소리가 뒤전에서 울렸다. 아정이 몸을 돌리니 예쁘장하게 생긴 처녀가 급히 다가서는것이였다. 가까이 온 다음 다시 보니 비수던지기를 할 때 황초삼을 입고 널판자앞에 서서 태연히 칼을 맞던 사당이였다.
《웬일루?》
의아쩍어하는 아정의 물음에 처녀는 성급히 대꾸했다.
《아씨, 도련님더러 밤에 종각에 나가지 말라고 일러주어요.》
영문을 알수 없는 아정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무슨 말씀인지 통…》
처녀는 좀 오연한 태도로 오늘 밤에 병무와 태봉이가 종각에서 싸우기로 했다는것을 알려주는것이였다. 그제야 어렴풋이 영문을 알아차린 아정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처녀가 다시금 랭랭하게 내뱉았다.
《우리 태봉이는 예사내기가 아니니 살인이 나지 않게 잘 조처하시라요.》
《?! …》
아정은 느닷없이 가슴이 활랑거렸다.
처녀는 인사도 없이 홱 돌아서더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아정은 불현듯 소스라치듯 놀라며 두손을 맞잡았다.
《어머, 도련님 집을 모르니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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