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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와 더불어 21-1. 밀영에 찾아온 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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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 16-02-21 02:18 조회 9,5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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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대부대선회작전의 총성

1. 밀영에 찾아온 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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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가을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서기는 함경북도인민위원회 서기장으로부터 긴 전화를 받았다. 학포탄광탁아소에서 일하는 한 녀성이 자기가 해방전에 조선인민혁명군에서 싸웠다고 하면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소청하기에 평양으로 보낸다는 내용이였다.

며칠후에 그 녀성이 내각청사로 찾아왔다. 찾아온 사연을 묻는 서기에게 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저 자꾸만 뵙고싶어서…》하고 간신히 대답할뿐이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국대표단과의 사업으로 매우 바쁘게 보내고계시였다. 대표단과의 사업을 마치신 수령님께서는 서기가 녀인이 찾아왔던 전말을 보고드리자 강흥석의 처 지순옥이 … 그 녀자가 살아있었구만라고 하시며 깊은 추억에 잠기시였다.

지순옥이란 어떤 녀자일가?

어버이수령님께서 1972년 5월 조선혁명박물관을 돌아보실 때와 1976년 3월 음악무용서사시극 《대부대선회작전》을 보실 때 그리고 1985년 10월 대성산 혁명렬사릉을 돌아보실 때 하신 교시들을 종합하여 아래에 지순옥과 관련된 사연을 소개한다.


우리가 무산지구진공작전을 성과적으로 끝마치고 백두산동북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며 8련대의 사업을 지도하고있을 때이니까 그게 아마 1939년 여름일것입니다.

어느날 7련대장 오중흡이 나를 찾아와서 부대실태를 보고했습니다. 그는 보고끝에 사령부로 오던 도중 올기강상류에서 강흥석의 처를 만나 8련대밀영으로 데리고왔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지순옥이였습니다.

그 녀자가 남편이 보고싶어 왔다고 하면서 밀영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모두 그 열정에 탄복하였습니다.

송화강이나 올기강 류역의 산악지대는 적의 군경들과 밀정들이 무시로 싸다니는 위험한 유격전구였습니다. 자칫하다가는 눈먼 총알을 맞을수도 있고 《통비분자》로 몰려 처형당할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녀자가 그것도 혼자서 남편을 찾아왔던것입니다. 그러니 그 녀자의 소행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지순옥의 남편 강흥석은 명사수로도 이름이 높았지만 애처가로서도 소문난 사람이였습니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그의 배낭속에는 안해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가 여러통 있다고 했습니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조혼을 한 그는 결혼직후 인차 혁명을 하려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10년 가까이 안해를 한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안해 역시 남편을 몹시 그리워하였습니다.

후에 알게 되였지만 정보선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내탐한 일제는 지순옥을 위협하여 그를 간첩활동에 끌어들이였습니다.

아무튼 강흥석이란 사람이 안해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였으니 경사는 경사였습니다.

강흥석이 식량공작을 나가고 없었기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사령부로 오라는 련락을 보냈습니다.

지순옥을 만나보니 몸가짐이 단정하고 례의범절이 밝은 녀자였습니다. 내가 그때 그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우리 동무들이 그 녀자에게 이 산천어는 장군님께서 부인을 위해 손수 낚은것이니 많이 들라고 했습니다. 그 소리에 지순옥은 몹시 놀라는것 같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된셈인지 밥을 몇술밖에 뜨지 않았습니다. 많이 먹으라고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녀대원 한명을 붙여 말동무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한모포속에 누워 밤새껏 많은 이야기를 한것 같습니다.

대원들은 모두 그들 부부의 상봉을 앞두고 경사가 난것처럼 떠들었습니다. 10년 가까운 세월 어려운 무장투쟁을 하면서 처음 보게 되는 상봉이였기때문에 나도 축복의 마음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모든 동무들이 강흥석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지순옥을 만나고나니 의문스러운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자기 남편이 있는곳을 어떻게 알고 사지판이나 다름없는 산속으로 찾아왔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부대의 위치를 어떻게 면바로 알아냈는가 하는것입니다. 그 녀자와 담화를 해본 동무들도 그가 하는 앞뒤말이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반영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녀자가 밀영에 들어온지 사흘인가 나흘인가 되였을 때 오중흡과 오백룡이 헐떡거리면서 나를 찾아왔습니다. 오중흡은 제가 인정에 사로잡혀 알아도 보지 않고 일제의 밀정을 사령부로 끌고왔습니다 하고 청천벽력같은 보고를 하면서 잘못했다고 사죄하였습니다. 오백룡은 혁명군소대장의 안해라는것이 유격대를 돕지는 못할망정 일제의 개가 되여 들어왔으니 이런 고약한 일이 어디 있는가고 하면서 당장 총살해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강흥석의 처와 함께 한천막안에서 자는 녀대원이 지순옥의 거동도 이상하고 말도 아귀가 맞지 않아 미타하게 생각하던중 밤중에 바느실로 잡아맨 그의 겹옷속을 깐깐히 살펴보다가 독약봉지가 있는것을 발견했다는것이였습니다. 적들의 독약공세에 얼마나 신물이 났던지 우리 동무들이 그런것쯤은 인차 식별해낼 때였습니다.

독약봉지가 들장났다는것을 그 녀자가 아는가고 물으니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모르기때문에 그저 감시만 붙여놓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참동안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습니다. 일본밀정이나 암해분자들이 우리 부대에 잠입했다가 적발된 실례는 물론 그전에도 있었습니다. 적발된 간첩들중에는 우리와 적대관계에 놓일수 없는 기본계급출신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순박한 머슴군이나 로동자들에게도 간첩임무를 주어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혁명군에 남편을 보낸 녀자를, 그것도 혁명군에서 소대장을 하는 사람의 안해를 밀정으로 길들여 우리 군영에 들여보낸 전례는 없었습니다. 혁명군소대장의 안해가 간첩임무를 받고 나타났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상사건이였습니다. 일본의 첩보모략기관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고약하였습니다.

오중흡의 보고를 받고 나는 강흥석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한 가정이 풍지박산이 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나는 오중흡과 오백룡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순옥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와 비교적 오랜 담화를 했습니다. 강흥석이네 가정사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혁명군으로 찾아들어올 때 고생하던 일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그의 친정집형편이 어떤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습니다.

화제는 자연히 강흥석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갔습니다. 강흥석이 래일이나 모레쯤 공작지에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을 하자 지순옥은 별안간 얼굴을 싸쥐면서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다가 저고리에서 제손으로 꿰맨 자리를 뜯더니 독약봉지를 꺼내는것이였습니다. 그는 《장군님, 저는 천벌을 받을 년입니다. 죽어마땅한 년입니다!》하고 온몸을 와들와들 떨었습니다.

그래 물 한모금을 먹이고 그 녀자를 좀 진정시킨 다음 부인이 자백을 했으니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기 죄과를 솔직하게 자백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혁명군은 관대하게 처리한다, 더구나 부인은 강흥석소대장의 안해가 아닌가, 그러니 겁내지 말고 말하고싶은것을 다 말하라, 어떻게 되여 간첩이 됐고 간첩이 된 다음 무슨 훈련을 받았고 혁명군으로 찾아올 때 임무는 어떤걸 받았는지 차근차근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지순옥은 간첩으로 흡수된 전말과 간첩훈련내용, 간첩임무와 입산경위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자백하였습니다.


후날 이 광경을 목격한 오백룡투사는 그때를 회상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아마 10년은 감수된것 같았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독약을 가지고 감히 장군님앞에 나타나다니, 그걸 작식가마나 밥그릇에 슬쩍 쳤더라면 어쩔번했는가. 고 조그마한 녀자가 아예 조선혁명을 망쳐놓을번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항일투사들이 지순옥을 회상하기조차 싫어하는 리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훈춘에 주재하고있던 일본령사가 작성한 정보기밀자료는 지순옥을 간첩으로 파견한 목적과 기타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파견상황;

1.지령내용

(1) 강흥석을 획득하는데 따르는 내부분렬공작

(2) 간부의 독살

(3) 유격대의 취조에 대해서는 부모의 강요에 따라 남편을 만나기 위하여 산에 들어왔다고 말할것

2.련락방법

본인과 본인이 획득한 유격대측 인물에 대하여 특무과 가다다경좌 혹은 미나미경위에게 직접 련락할것

3.입산 날자, 시간 및 장소

부모에게 본 공작을 승인시키고 8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연길에서 본인에게 각종 필요한 지식을 준 다음 8월 10일 계원과 동행시켜 유격대잠복지로 지목되는 화룡현 맹하동 서남쪽 1088고지와 서쪽 의란구방면에 목표를 두고(8월 8일 오후 10시 김일성주력부대 120명이 화룡현 룡택촌을 습격하고 서남쪽 밀림지대로 도주한데 의하여 이렇게 판단함) 입산시키였다.

4.귀래예정

똑똑치는 않으나 대체로 2∼3개월을 필요로 한다고 예견.》(《훈령정기밀 제186호, 소화 15년(1940년) 7월 26일 훈춘령사 기우찌 다다오 보고》)


일제특무기관에서는 지순옥을 《생간》이라고 했습니다. 《생간》이란 《손자병법》에 나오는 술어인데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야 하는 간첩이라는 뜻입니다. 지순옥을 《생간》으로 선택한것으로 보아 적들이 그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것 같습니다. 그를 직업적스파이로 써먹자고 했을수도 있습니다.

적들은 지순옥에게 네 남편이 유격대기관총수가 되여 황군을 수없이 해쳤으니 그 죄는 3대를 멸살시켜도 씻을 길이 없다, 그러나 네가 공산군부대에 찾아가서 남편을 귀순시키고 우리가 주는 임무를 수행하기만 하면 상금도 후히 주고 잘살게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3대를 멸살시키겠다고 하니 지순옥이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의 자백을 받고보니 가슴이 여간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녀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녀인들의 마음속에 간직된 깨끗한 사랑과 순정마저 우리와의 대결에 서슴없이 악용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비렬성과 악랄성에 분노를 금할수 없었습니다. 혁명을 교살하기 위한 제국주의자들의 수단과 방법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분렬와해시키기 위해서라면 부모처자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사제간의 사랑까지도 악용하는것이 바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습성입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얼을 짓뭉개다 못해 우리 인민의 아름다운 인정세계마저 초토화하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조선사람들을 야수화하려고 했단 말입니다.

우리의 무장투쟁은 외세에 의해 강탈당한 령토와 국권을 찾아내기 위한 투쟁이였을뿐아니라 인간을 지켜내고 인간적인 모든것을 고수하기 위한 야수들과의 대결이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을 야수화, 불구화, 기형화하는것이 제국주의자들의 본성입니다. 안해에게 간첩훈련을 주어 남편이 하는 일을 훼방하게 하고 남편의 사령관과 전우들을 독살하도록 강요하는것이 그래 야수화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행성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지금 환경오염에 대해 몹시 떠들고있습니다. 물론 환경오염이 인류를 위협하는 큰 골치거리인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위험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가속화되고있는 도덕의 붕괴와 인간오염입니다. 이 세계의 하수도와 오물장들에서는 매일과 같이 제국주의반동들과 그 사환군들에 의하여 사람의 탈을 쓴 야수들과 기형아들과 불구자들이 산생되고있습니다. 인간오염은 력사발전을 저애하는 가장 큰 제동기입니다.

나는 엎드려 우는 지순옥을 달래면서 걱정하지 말라, 늦게나마 자기 죄를 깨달았으니 우리는 부인을 조금도 다르게 생각지 않는다, 강압에 의해 죽지 못해 저지른 일인데 어찌하겠는가, 어서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지순옥이 간첩임무를 받고온 녀자라는것이 부대에 알려지게 되자 밀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나는 원래 지순옥의 문제를 비밀에 붙이려고 했으나 오중흡, 오백룡 동무들이 부대의 안전을 생각해서 사실을 공포하여 경각성을 높이게 하였습니다.

사령부로 달려온 강흥석은 밀영에서 쉬쉬하며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돌 지경이였습니다. 그가 제손으로 안해를 처단하겠다고 하면서 권총을 들고 돌아가는 바람에 나는 강흥석이 꼭 무슨 일을 칠것 같아 그를 설복하여 자기 련대가 있는 홍기하막치기로 보냈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나게 된 부부를 그렇게 갈라놓자니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군장의 직함을 가지고있던 진한장 같은 사람도 자기를 귀순시키려고 찾아온 아버지에게 행패를 하려고 했다니 강흥석의 심정은 리해할만한것이였습니다.

아량이 있고 인정이 헤픈 안길도 어느해인가 귀순을 권고하려고 온 자기 가문의 사람을 제손으로 처단해버리겠다고 하다가 충고를 받고 그만둔 일이 있습니다.

그러루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총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된다, 생각해보라, 혁명적원칙을 지킨다고 하면서 인민을 위해 싸우는 군대가 자기 혈육을 쏴죽인다면 그런 군대를 누가 지지해주겠는가, 적들은 바로 우리 혁명군이 동무네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부자간, 형제간이 서로 원쑤가 되여 골육상쟁을 하기를 바라고있다, 이런 리치를 왜 모르고 헤덤비는가고 일깨워주군하였습니다.

그런데 강흥석의 경우에는 그런 식의 꾸중이 잘 들어먹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한동안은 밀영에 있는 대부분의 대원들이 지순옥을 믿지 않고 경계했습니다. 지어는 마땅히 그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순옥을 믿었습니다. 그는 일가친척을 살리기 위해 할수없이 간첩임무를 받은 사람이고 적의 강압과 기만선전에 넘어가 혁명군에 대한 인식을 잘못 가지게 되였던 녀성이였습니다. 사람이 계급적으로 각성되지 못하면 그런 함정에 빠질수도 있는것입니다. 지순옥은 혁명조직을 통해 체계적인 교양을 받은 녀자도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와 우리 군대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게 되자 즉시 죽음을 각오하고 죄과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가 만일 나쁜 마음을 계속 품고있었더라면 자백은커녕 우리가 먹는 음식에 독약을 쳤을것입니다. 그럴만한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순옥은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뒤늦게나마 자백을 했단 말입니다. 이런 녀인은 반드시 우리 편으로 되면 되였지 적의 편이 될수 없습니다.

나는 언제인가 김책동무한테서 리계동살해사건의 경위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리계동은 김책과 함께 감옥살이도 하고 주하유격대도 무은 오랜 당원입니다. 운남 강무당 졸업생인 그는 전투지휘도 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군사정치일군을 주광아라는 간첩이 죽였습니다. 주광아는 유격대에 침투한후 한개 부대의 비서장자리에까지 기여오른자였습니다. 그자는 부대의 규률이 해이된 틈을 타서 리계동을 암살했습니다.

이런 실례를 보더라도 우리 대원들이 지순옥을 경계한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순옥을 용서해주었습니다. 왜 용서해주었는가. 자기 죄를 제입으로 자백한 그의 량심을 보았기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고급한 존재로 되는것은 리성과 량심, 도덕과 의리를 가진 존재이기때문입니다. 사람은 량심을 떼놓으면 볼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량심을 더럽히면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의 가치도 상실하게 됩니다.

지순옥은 비록 한때 량심을 어지럽혔지만 자신과 싸워 그 량심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우리에 대한 선의의 감정을 가지고 자기의 오점을 털어놓은 녀자입니다. 사람이 한번 구렁텅이에 빠지기는 쉬워도 거기에서 헤여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순옥은 우리의 도움을 받고 힘겨운 자체투쟁을 통해 거기서 뛰쳐나왔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갱생할 힘이 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반성하고 새 출발을 하려고 결심한 사람을 무엇때문에 구렁텅이에 밀어던지겠습니까.

혁명은 인간의 량심을 지켜주고 빛내여주기 위한 투쟁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순옥의 그 량심을 지켜주고싶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가문에 한명의 혁명가만 있어도 그 혁명가를 혈육들로부터 고립차단시키려고 꾀하였습니다. 우리의 애국력량을 닥치는대로 압살하고 분해시키고 각개격파시키자는것이 적들의 시종일관한 책략이였습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내부의 혈연적련계를 《귀순공작》에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적들의 종국적인 목적은 공산주의자들을 인민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키자는것이였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악랄한 방법의 하나가 혈육끼리 서로 경계하고 증오하고 잡아죽이게 하는것이였습니다.

적들의 간계와 수법이 이러하다는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거기에 말려들어간다면 그보다 더 미욱한짓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기때문에 우리는 그가 설사 간첩임무를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라와 동족을 팔아먹는 대죄를 짓지 않은 이상 다 용서해주고 개심시키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한번은 총독부에서 파견한 밀정이 예수교신자로 가장하고 우리를 찾아온적이 있습니다. 밀정은 밀가루 몇포대를 가지고 와서 객지에서 고생하는 혁명군을 위해 조선서 가져온 선물이니 만두라도 빚어 잡수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작식대원들을 시켜 그 밀가루로 몽땅 만두를 빚게 하였습니다. 얼마후 작식대원이 그릇에 만두를 담아가지고 내앞에 나타났습니다. 밀정은 우리가 권하는 만두를 사양했습니다. 어서 들라고 거듭 권고하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밀가루에 독약을 섞어가지고왔으니 그럴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그 밀정에게 당신은 무엇이 그렇게도 배가 아파서 나라를 찾겠다고 한지에서 고생하는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가, 조선사람으로 태여났으면 조선사람답게 처신해야지 그렇게 너절하게 살아서는 무엇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개심을 하고 새 출발을 하라고 타일러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산전막에 두고 대접을 잘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그후 어느 잡지엔가 그 사실이 실렸다고 합니다.

나는 오백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순옥을 그냥 밀영에 두고 교양하도록 하였습니다. 얼마후에는 그를 재봉대로 보냈습니다. 재봉대에서는 대부대선회작전을 앞두고 600벌의 군복을 만들 과업을 받았는데 일손이 딸려 애를 먹고있었습니다. 강위룡도 재봉대에 동원되여있었지만 그 역시 지순옥이 오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희숙을 비롯한 녀당원들에게 지순옥을 따뜻이 대해주고 잘 교양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지순옥을 진심으로 돌보면서 교양하였습니다.

나는 추석을 쇤 다음 화라즈쪽으로 가면서 홍기하막치기에 있는 강흥석을 그리로 불렀습니다.

이렇게 되여 화라즈의 깊은 밀림속에서 마침내 그들 부부의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지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화라즈에 얼마간 머물러있으면서 군정학습을 하였습니다. 그때 지순옥은 우리가 만든 학습교재들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소학교물도 먹은 식자가 있는 녀성이였습니다. 그후 행군기간에도 용케 부대를 따라다니며 대원들의 식사를 보장해주었습니다. 생소하고 힘든 생활이였으나 그의 얼굴에서는 노상 웃음기가 사라질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다 잘돼나가던 일이 그만 비극으로 번져갔습니다. 강흥석이 륙과송전투에서 애석하게도 전사했던것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지순옥이한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큰 충격을 감당해내지 못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때문입니다.

지순옥은 행군때마다 김운신이 메고가는 기관총을 가끔 유심히 살펴보군했습니다. 그것은 생전에 강흥석이 다루던것이였습니다. 우리 동무들은 그가 지방공작을 나갔기때문에 김운신한테 기관총을 인계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사실상 아무 소용도 없는 숨박곡질이였습니다.

우리는 륙과송전투를 치른후 송화강변의 수림속에서 연예공연을 조직하였습니다. 그 공연장소에서 나는 수심에 찬 지순옥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남편도 없는 그를 부대에 그냥 두어둘수 없어 그후 우리는 지순옥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를 보내주지 않으면 일가친척들이 화를 당할수 있었습니다.

그 녀자가 밀영을 떠날 때는 물론 려비도 주고 길안내자도 붙여주었습니다. 밀림속으로 멀리 사라질 때까지 나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그 녀인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합니다.

정전후에 지순옥이 나를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너무 바빠서 그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서운해했을수 있습니다. 그후에는 이래저래 짬을 낼수 없었습니다. 평양까지 왔다가 나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지순옥이 떳떳이 나를 만나러 온것을 보면 우리와 헤여진 후에도 조국과 민족 앞에 죄될 일은 그리 하지 않고 살아온것 같습니다. 그때 그를 만났더라면 산에서 내려간후 그가 살아온 경위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들을수 있었을것입니다. 다행히도 해당 부서 동무들이 《현대사자료》라는 책을 보내주었기때문에 지면을 통해서나마 그 경위의 일단을 대충 파악할수 있었습니다. 그 책을 보면 지순옥이 집으로 돌아간후 자기를 빨찌산밀영에 파견한 적들앞에서 처신을 어떻게 했고 혁명군의 내부생활에 대해 어떤 식으로 설명해주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기우찌 훈춘령사가 상급에 제출한 보고내용에는 조선인민혁명군 간부들은 모두가 사상이 견실하고 시종 혁명승리를 위한 노력에 열중하며 대원들은 이에 자연히 매혹되여 전적으로 간부들을 신뢰하면서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있어 제반 공작의 실행이 용이하다는것과 제2방면군이 사기왕성하고 단결력이 있는것은 군지휘 김일성이 맹렬한 민족적공산주의사상을 가지고있고 완강하고 건강한데다가 통제의 묘술을 가지고있는데 있다는 내용이 지적되여있었습니다.

그만하면 우리 부대의 실상이 비교적 공정하게 서술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순옥이 우리 혁명군의 생활과 우리 대원들의 정신상태에 대해 편견없이 정확하게 설명하였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지순옥이 집으로 돌아간후 적들이 그를 어떻게 취급했는가 하는것을 알려면 기우찌령사의 보고내용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사항만 훑어보아도 충분할것이다.

《-.소견과 처지

1.소견

(1) 본인의 공술은 현하의 각종 정세에 비추어볼 때 론리가 정연하여 일단 수긍할수 있지만 본인이 입산초기 독약을 감추어가지고 갔다가 발견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처형도 받지 않고 1년나마 비단과 행동을 함께 하였을뿐아니라 무사히 놓여나오게 된것은 혹은 유격대의 속심에 따라 위장귀환한것이 아니겠는가고 생각되여 금후의 언동에 심중한 주의를 요한다.

2.처지

(1) 지순옥은 안도에 있는 가다다공작반장에게 넘겨 은밀히 감시하면서 위장귀래자라는 전제밑에 회유에 힘쓰며 보충적취조를 추진함과 함께 특별공작을 따로 시키고있다.》(《훈령정기밀 제186호, 소화 15년(1940년) 7월 26일 훈춘령사 기우찌 다다오 보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지순옥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무사히 돌아간데 대해 몹시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인간을 한갖 말하는 짐승으로밖에 보지 않는 그들의 사고방식으로써야 어떻게 그 비결을 찾아낼수 있겠습니까.

지순옥을 징벌대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의 죄를 묻지 않고 그를 용서해주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를 처형했더라면 어떻게 되였겠습니까. 그의 시집과 친척들은 모두 반동가족이라는 루명을 썼을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혁명은 인간을 매장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인간성을 고수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발양시키기 위한 혁명입니다. 인간을 매장하는것은 쉬운 일이지만 인간을 구원하는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재생의 길을 열어주고 인간으로서 참된 생활을 해나가도록 믿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해주고 부활시켜주는것이 가장 값높고 위대한 혁명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인간을 막돌처럼 쉽게 버리지만 우리는 가장 귀중한 존재로 아끼고 건져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단 믿음을 준 사람에 대해서는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자주 말하는것이지만 김정일동무의 성품가운데서 제일 훌륭한 장점의 하나가 바로 사람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것이며 한번 믿음을 준 사람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것입니다.

김정일동무는 언제인가 아래일군들에게 나뽈레옹은 《그대들이 나를 믿노니 나도 그대들을 믿는다.》고 말하였는데 자기자신은 그와 반대로 《나는 그대들을 믿는다. 그대들도 나를 믿으라.》고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김정일동무의 철학적신념으로 되고있습니다.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을 사랑하며 인민을 위해 헌신적인 김정일동무를 대할 때마다 나는 우리 나라와 우리 인민의 장래에 대해 마음놓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군합니다.


제국주의자들이 사람을 더럽히고 사람의 운명을 망치는것을 생업으로 삼고있을 때 우리의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소중히 다루고 보호해주어야 할것이 바로 사람들의 정치적생명이며 인간관계는 적극적인 사랑의 원리, 믿음의 원리, 구원의 원리로만 일관된 숭고한 도덕과 의리로 얽혀져야 한다는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시였다. 그것은 조선혁명의 신성한 륜리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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